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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06. 2019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 독서모임을 기억하며

모임 장소는 유동인구가 무척이나 많은 골목 정 가운데를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다 모였나 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양 사이드에서 박자감 있는 상인들이 격렬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탓에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진이 살짝 빠진다. 온도는 높고 유독 습한 날씨에 조금 남아 있던 기운도 바닥을 치기 일보직전이다.


그래도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나를 주축으로 한 독서 모임이 시작되는 첫 번째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올 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읽고 싶은 사람들이기에 부쩍 기대가 됐다. 총 여덟 명의 인원이 오기로 약속돼 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으로 딱 여섯 명의 멤버가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곳은 무척이나 특별한 공간이다. 시장 안에 위치한 1층 벽돌집을 개조한 카페는 이름도 정겨운 가정집이다. 시작과 동시에 이름에 걸맞게 따뜻한 온기가 곁을 감싼다. 각자 귀한 시간을 내어 오는 멤버들에게 충분한 대화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무장해 스토리보드도 정말 열심히 만들어 가져 갔다.


처음 보는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는 그 사람이 가진 물건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독서모임이기 때문에 읽어 내려가기 직전에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자 좋아하는 책을 골라오라 말씀드렸더랬다. 열한 계단, 머니, 그리고 아몬드. 가지각색의 책을 가져온 우리는 현재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름도 따뜻한 가정집, '우리들의 아지트'가 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자아'를 탐색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선한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여 그들은 항상 가치를 타인, 즉 사람으로 두고 있었다. 내가 진정성을 보이더라도 상대방은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오롯이 혼자 상처 받았던 우린 결국 '잘못 살고 있는 걸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점차 거절하는 법을 잊고, 주변 사람이 하면 따라 하는 앵무새가 돼버렸다. 이젠 진짜 내 권리를 찾고 싶은데 서른을 앞둔 우리들은 결국 거절하는 법을 공부해 터득해야 한다. 속마음은 자꾸 아니라고 하는데 시류를 쫓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점차 자존감을 잃어가는 우리들. 나 역시도 지금 집중하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타인을 존중하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정작 나의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부해버렸다. 그렇게 나를 존중하는 방법을 잃어버렸고 마음에 이어 몸도 하나둘씩 영혼을 잃어갔다.


이제야 우리는 나를 위로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며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결심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저 책 읽는 습관을 기르고 싶어서 오셨다면서 실상은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심오하게 관찰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를 넘어서 사고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은 탓에 대화를 중간중간 사람들의 눈을 볼 때마다 사색에 잠긴 그들의 모습에 자꾸 감탄하게 됐다.


어려운 책에는 부담감이 있었던 모임원들은 첫 책의 주제를 '대화'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우린 얻고 싶은 것이 명확했다. 대화를 이끌어 내어 공감을 얻어내는 것에서 시작해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에 대한 책 열 권을 후보로 선정했다. 말 주변이 없어도 대화 잘하는 법, 정신과 의사에게서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 그리고 대화의 재발견 까지. 결국 다음번 모임 때 읽을 책으로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만 호구는 싫어"로 선정됐다.


두 번째 모임 때는 주제 두 개를 가져갔다. "책을 꼭 다 읽어야 할까?" 그리고 "좋은 질문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브런치 에세이였다. 아주 짧은 글 속에서도 의외의 질문들과 답변들이 나왔고 첫 모임 때 수줍었던 우리의 대화는 점차 급물살을 탄 배처럼 정신을 놓고 있으면 저 멀리 떠나가 버렸다.


내 질문에 누군가 우물쭈물하며 망설였다면 아마 질문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자.


누구에게나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듯 토크쇼에서는 당연한 듯 의미 있는 질문을 통해 가치 있는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유도한다. 한 모임원은 <대화의 희열>을 보던 도중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게스트로 나온 유시민 작가에게 누군가 "내 삶의 의미가 뭐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 유시민이 답을 찾지 못하자 옆에 있던 다니엘이 한 마디를 던졌다. "질문의 답을 잘 못 찾을 때,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며. 그는 인생의 의미가 뭘까가 아니라,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라는 질문이 각자의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려준다. 


일상생활에서 질문은 가끔 폭격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일말의 고민 없이 그리고 필터링 거치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나와 질문의 형태로 변하면 지구에 쓸모없는 운석이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듯 내 마음도 똑같아지는 건 순식간이다. '돈은 어떻게 벌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얼굴이 빨개지며 자신 없는 모습으로 웅얼거리며 말을 시작하면 그들은 뒤이어 또 다른 문장으로 운석을 떨어뜨린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는 말을 이제야 하게 됐기에 망정이지 더 지속됐다면 답변을 하느라 내 에너지를 온통 소진할 뻔했다.


읽고 싶어 모인 멤버지만 생각보다 '잘 질문'한다. 서로의 토시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 수집가가 되어 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턱 없이 부족하다며 겸손하게 모임에서 말을 던지고 있지만, 돌아보면 우린 이미 확장된 사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칭하는 것뿐. 아직 월요일이다. 이번 주 금요일이 또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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