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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24. 2019

너무 당연한 보통의 나날들

당신의 이야기, 둘

두 달간 함께 불편함과 고민거리를 나누던 글쓰기 수강생과 이제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단순히 글쓰기를 짜임새 있게 하는 방법론적 글쓰기 보다는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를 유도했다. 나의 불편함을 토대로 나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발굴하도록. 나의 노력에 수강생은 열심히 대화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너무 당연한 보통의 날 _ 준희


너무 당연한 것이라 보통의 날에는 지나쳐버린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자연스러워서 못 느끼는 것. 가끔은 그런 순간을 더 오래 생각하고 되뇐다. 오늘은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를 보면서 꼭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구우면 한 면이 통째로 뜯기거나 검게 타버려서 속살만 파먹고 버리곤 했다. 불판의 빗살무늬가 조금 더 짙은 색으로 새겨진, 적당히 노릇노릇해서 담백한 살점과 바스러지는 껍질이 짭짤하게 녹아드는 한 입. 


빌딩숲학교 사진 수강생분의 사진을 제공받았습니다.


생선 아래 깔린 것에 눈길이 갔다. 은박지 위에 두면 몸에 안 좋다며 종이 호일을 좍-찢어 그 위를 덮는 모습. 적당히 기름도 빠지고 뼈도 바를 수 있다며 툭 던진 말이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아채기도 힘들었던 배려들. 오늘 저녁 한 끼가 그 순간을 붙잡았고 보통의 날보다 더 든든함을 느꼈다.


에버랜드 가자 _ 승은


에버랜드 가자.

드디어 얘가 미쳤구나. 이 나이 먹고 에버랜드라니. 하지만 원래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가누가 더 또라이인지를 두고 경쟁하는 묘함이 있다. 자기 할 말만 하던 단톡방에서 오랜만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대화가 이뤄졌다. 놀이동산이라는 단어는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다 큰 어른이 신난 아이가 된다. 머리띠도 하고 교복도 입자는 둥 고등학생처럼 신나던 중 분위기 초 치는 단골 대사가 나왔다. 


그래서 언제 만날래?

신입 회사원, 대학원생, 취업 준비생, 복학한 대학생. 과연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 명씩 조심조심 되는 날을 말했다. 하루라도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들에게는 주말 출근, 랩미팅, 회사 면접, 조별 과제 등의 벌이 내려진다. 우리는 그런 벌들을 다 받고 3주 뒤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빌딩숲학교 사진 수강생분의 사진을 제공받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8시 강남역, 우린 5002번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 타는 2층 버스를 타며 친구가 내지른 힘없는 와~ 소리. 먹구름 잔뜩 낀 하늘 때문이다. 젖은 회색 걸레 같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꼭 짜지며 더러운 빗방울을 툭툭 떨어뜨릴 것 같았다. 오전 강수확률 60%라고 핸드폰 배경화면 위젯이 알려주었다. 비 오면 놀이기구 안 할 텐데…… 생각하며 우리는 버스에 앉자마자 까무러치듯 잤다. 온전히 놀 오늘은 보다 치열한 어제, 어쩌면 3주를 뜻했다. 


텁텁한 입맛을 다시며 눈이 부셔 잔뜩 찌푸린 우리의 모습은 에버랜드에 도착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엠티 다음날 일어난 대학생 같았다. 얼굴만큼이나 구겨진 기대로 내린 우리 앞에는 의외의 풍경이 있었다. 회색 구름 저 끝으로 보이는 햇빛, 그리고 아무도 없는 매표소, 확인해보니 그새 바뀐 일기예보. 그러니까, 기상청 만세, 눈치게임 대성공이었다. 3주 간 죄인이었던 4명은 어느새 아이가 되어 시끄럽게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환상의 나라지!



매 주 최선을 다해 숙제를 해온 나의 그들. 이번 숙제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자 했다. 빌딩숲학교의 다른 학과인 '사진학과' 수강생분들의 사진을 받았고, 무작위로 선정했다. 거꾸로 보고, 멀리 보고, 상상하기.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사진에 대해 써보는 것. 구체적인 사실, 나의 생각 그 두 문단 사이에 연결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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