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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an 29. 2020

누구나 기획자가 될 수 있다

모두가 기획자가 되는 날

나는 프리랜서다. 고군분투한 지 딱 7개월 됐다. 짧은 시간에 책을 내면서 이제 멋스럽게 작가라고 불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하반기엔 발에 땀띠 날 정도로 뛰어다녔다. 나를 알리는데 책은 그저 하나의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꿈을 이뤘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이미 책을 두 권이나 썼으니 충분히 꿈을 이뤘다고 평가한다. 직업의 타이틀에 있어서 책을 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보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라는 질문으로 인해 내 꿈은 항상 딱 하나였던 것 같다. 국제변호사, 외교관 같은. 그런데 이제 굳이 한 가지 직업만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야근을 끼니 챙겨 먹듯 하고 피로가 쌓임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니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적으로 찾게 되었다. 내 머리의 한계를 체감할 때마다 강박적으로 매모에 집착하게 됐다. 그렇게 작가로 글쓰기 강사로 시작된 나의 프리랜서 이야기는 기획자로 번져갔고, 기획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역 사회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기획자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튼튼한 건물이면 끝나지 않는다. 외형도 그에 맞는 콘셉트가 있어야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본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위대한 기획자인 이유는 모두 알다시피 튼튼한 건물뿐만 아니라,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콘셉트를 가진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을 가진 기획이어야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기획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멀지 않은 시기다. 사실 모든 일의 시작과 과정에는 탄탄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직업과 연령이 다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는 글쓰기 강의 역시 기획이 있어야만 참여자가 많아지고, 마음을 돌보아주는 문화 활동 역시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2017년 OECD 더 나은 삶의 지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삶의 지표는 조사대상 39개국 중 30등으로 하위층에 속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삶의 질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늘 대상국 최하위 수준이다. 더 직관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출산율과 자살률이다.


피부로 와 닿는 불행지수 탓에 사회문제는 나와 너무 가깝게 맞닿아있다. 분명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국제변호사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자만심에서부터 시작해 '안 되더라도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지' 라며 별거 아닌 일로 치부했다. 당시에 언니 오빠들이 우리는 88만 원 세대라며 결국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땐, 답답하기까지 했다.


해결해야 할 지역 문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그 답답한 언니가 된 느낌이다. 사회로 뛰어들자마자 초년생으로 마주한 산재했던 다수의 문제로 인해 결국 퇴사를 결심했고 프리랜서가 됐다. 그렇게 세계를 향해 날개를 활짝 펼치겠다고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말하던 열다섯 소녀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문제나 먼저 살펴보자 다짐하는 서른 살 언니가 됐다.


이렇게 코 앞에 닥친 막막한 현실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다. 일단 일자리가 없다. 전국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역사회 일자리의 부재다. 그래서 자꾸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나가게 되는 청년들은 또 다른 지역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 이렇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심지어 서울과 인천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서른 살 그녀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있다


내가 퇴사한 제일 큰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나도 행복하고 그 글을 읽은 사람들도 행복감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퇴사했다. 이유는 물론 꿈 때문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일말의 두려움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다크서클과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녀들의 미안하다는 말 뒤로, 다른 이들은 ‘이러니까 애 엄마랑 일 못하지.’


아이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함께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십 년후 따라가고 싶었던 한 선배가 있었다. 홍보 대행사에서 커리어우먼으로 국내외를 활발하게 움직이던 그녀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국 생각했다. 아이를 낳으면 결국 길은 하나라는 걸. 퇴사, 회사 생활에서 아이를 낳고 다닐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내겐 직장 내 복지가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선배들처럼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직장은 그럴만한 복지를 제공하지 않고, 마을 역시 내가 심적으로 힘들 때 내 곁에 없었다.


서른 여자 청년인 내게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사람들,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겠지만(않았지만) 이렇게 이번 연도 나의 기획을 시작으로 당신의 기획도 함께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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