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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Feb 21. 2020

마음이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내 마음에도 통제권이 있었으면 좋겠다

"퇴사하면 뭐 해 먹고살지?" 내 주변 친구들은 쉬이 내게 묻는다. 그들이 보기에 성공적인 퇴사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런치 작가도 되고,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고. 만나자고 하면 약속 잡기도 어렵고. 그들이 질문하면 모두에게 똑같이 딱 한 마디 대답만 한다.


"뭐든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우문현답식의 내 대답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뒷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고, 나머지 친구들은 연이어 질문하는 것. "프리랜서 해서 제일 좋은 점이 뭐야?"


일 할 때는 퓨즈를 올리고, 쉴 때는 퓨즈를 꺼 버리기


일단 제일 좋은 점이라 하면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주말에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않으면 온전히 나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주말에도 일해서 힘들겠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전혀 아니다. 시간에 관계없이 정말 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폭 넓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굳이 책상 위에 버티고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내 기분에 따라, 내 몸 상태에 따라 일의 능률은 들쭉날쭉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 날에는 퓨즈를 빼 버린다. 온몸에 힘을 빼고 머릿속을 비운 채 눈을 감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 책장에 늘어놓은 책을 바라본다. 한 권씩 제목을 따라 읽으면 신기하게 할 일의 아이디어가 번떡 하고 떠오른다.


노트북을 킨 이곳이 지금 나의 사무실이다.


게다가 노트북을 핀 어느 곳이든 나의 일터로 만들 수 있다. 집 앞 개인 카페는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카페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매일 같은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뭔가 글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엔 인천 앞바다를 드라이브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카페를 찾아 유랑해 노트북 키보드를 다시 타이핑하면 어느 순간 술술 풀린다.


그만큼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삶의 통제권은 늘어난 편이라 삶의 만족감은 늘어났다. 행복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월요일에는 되도록이면 쉬엄쉬엄 일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도 일을 잡지 않는다. 혹시라도 언제 여행을 갈지 모르니까.


마음이 프리 하지 않은 순간이 오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좋고 나쁨이 존재한다. 선택의 폭은 넓어진 반면에 그만큼 마음이 쉬이 편안해지지 않는다. 자꾸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보고 머리를 끊임없이 굴려야 한다. 매일 새로운 공고를 찾아보고 더 나은 계약을 위해 하루하루 새로운 지원서를 적어본다. 특히 지원사업이 끝나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거나 강의를 시작하는 3월 전후인 1월에서 2월 기간은 프리랜서들의 보릿고개다.


2011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130만 명 규모였던 '특수형태고용 종사자'는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연구에서는 210만 명으로 약 50%가량 더 늘어났다. 자유노동의 규모는 전체 취업자 중 17.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통제권과 만족은 높지만 과연 직장인만큼 '보장'이 될까. 먼저 꾸준한 소득 보장이 어렵다. 나 역시 최근 여러 곳에서 글쓰기 혹은 독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단기로 계약을 맺었다. 일거리가 한꺼번에 몰릴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지금부터 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시기가 왔다.


마음이 프리하지 않은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혼자 처리해야 할 행정, 회계업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싶은데 지원 사업을 받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영수증을 정리하고 꼼꼼한 정산이 필요하다. 1원이라도 놓쳤을 때는 다시 영수증을 켜고 엑셀 파일을 정리해야 함을. 그 작업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회사라는 옷이 벗겨진 첫 순간,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여전히 나를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가 주류로 편승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불안함을 잠재우는 방법은 프리랜서 사이에서 질문하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꾸 수업이 뒤로 밀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오는 전화를 받는게 사실 좀 두려울 수 밖에. 다수인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어려움만 토로할 뿐, 우리의 어려움은 크게 경외시하는 편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에만 집중해 반대편은 돌려보기 어려우니까. 안정적인 수입이 답보 돼 생각할 수 있는 폭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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