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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Feb 27. 2020

로컬은 문화가 필요하다

왜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했을까

서른이 넘도록 인천에서 살고 있다. 나고 자란 동네가 인천이라 그런가 마계인천이라는 둥, 짠내가 나는 동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의외였던 건 그런 이야기를 나만 듣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천이 아닌 그 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많은 차별과 소외의 이야기에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로, 남편은 작곡가로 그리고 동생은 무용가로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인천을 벗어나는 시간이 많다. 공개 방송 혹은 연주를 하기 위해 악기를 챙겨 차를 끌고 서울로 나가야 하는 남편. 한복 더미를 챙기고 메이크업을 하고 무용을 하러 서울로 나가야 하는 동생.


나 역시 글을 쓰는 작가로 살다 보니 크기 가릴 것 없이 책방 가는 걸 좋아한다. 요즘에는 핫한 독립서점을 보물찾기 하듯이 탐색한다. 인천에는 작은 공간에서 독립 서적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아쉬운 건 공간이 좁아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사람들이 모일만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에 서울에는 독립서점의 개수도 많고 특별한 컨셉을 가진 공간들이 많다. 게다가 독립서점 안에서 책 읽는 활동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과 연계하여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있었다.


왜 사람은 모이기 시작했을까


지난해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글을 매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어찌어찌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해도 나의 엄마 또래의 혹은 할머니 또래의 여성과 남성을 만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을 수 있지만 어떻게 또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커뮤니티 속에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전 맹물 같은 사람이에요. 학교를 가서도 아니면 새로운 동네에 가서도 그냥 휩쓸려 다니는 사람이랄까요."


만나서 글을 쓰고 대화하는 우리들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었을 때, 마음은 하나였다. 맹물처럼 살아온 삶이 후회됐고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거였다. 어떤 계기로든 나를 알고 싶었지만 그들의 도구는 글이었고, 나와 그렇게 만남을 가지게 됐다. 대화를 통해 결과론적으로 이해하게 된 건 그들은 '도대체 나라를 인간은 누구고, 그래서 나는 뭘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로컬 지역은 지금 문화가 필요하다


과거 마을은 서로 의지하며 외부인을 물리쳐야 했으며 규칙을 지키며 함께 의지하며 살던 가족과 다름없었다. 마을이 빠르게 사라지게 된 건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사람들은 점점 공업화된 곳, 공장이 몰려있는 곳으로 떠나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새로운 공동체의 개념이 확립됐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고, 각자의 삶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산성과 효율화가 주목적이 된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데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곁에 남은 사람이 없다. 앞서 나의 글쓰기 수강생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맹물'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도 내 색깔을 찾고자 각자도생으로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로컬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기반시설도 그리고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의 움직임은 지역적 차원의 커뮤니티를 장소적 맥락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역사회로서의 커뮤니티론'에 조금 가까운 상황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공간 기반 커뮤니티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반대로 네트워크로서의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공동체로서의 커뮤니티론'이 공존한다. (천현숙, 2001)


창조자본인 문화예술가들이 공간을 소유하는 순간, 그 지역은 새로운 로컬 문화를 가진 공간으로 변모하곤 한다. 철공소가 즐비하던 골목이었던, 값이 저렴한 공간을 찾던 예술인들이 모인 문래동은 예술촌으로 바뀌었고, 이태원의 경우도 몇몇의 셰프가 자리 잡으며 젊은이들의 힙한 성지순례 장소가 됐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공간에서 쫓겨난 그들은 '또 다른 지역'에서 그들의 문화를 전파할 수밖에 없어졌다.


전세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2년 후면 떠나야 하는 유목민이다. 정착지 없이 살아가기에 유약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통적인 유목민은 언제든 누구나 거친 자연 속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선천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사회문화적 책임이 누구에게나 있다. 모두가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동체 의식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장소적 맥락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커뮤니티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기적인 네트워킹의 연결이 선행될 때, 사람들은 그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현재 고착화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컬 문화를 먼저 만들어 함께 시도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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