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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Mar 10. 2020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려면

미안해. 아빠가. 가끔 내게 사과한다. 아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일 년 전부터는 그의 사과를 거절하지 않고 잘 받는다. 그럴 때마다 왠지 아빠에게 고맙다. 50대에서 곧 60대를 넘어가는 그는 본인이 기성세대임을 알고, 386세대라 불리는 그들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인지하고 있다. 본인과 주변 친구들은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랑하는 '딸내미'가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 보면 '본인 잘못'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연대해서 싸워 얻어내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면 되는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아빠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아빠는 감정적이면서 경험적인 부분에 있어 딸내미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출했다면 이철승 교수는 이와 함께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했다. 그는 '세대라는 축을 통해 오늘날 한국인들이 직면하는 불평등 구조의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분명 민주항쟁으로 인해 우리에겐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책에서 부르는 386세대는 현재 50대의 우리 아빠 친구들이다. 그들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세대다. 실질적이고 절차적 의미의 '자유 민주주의'를 이 땅에 도입한 첫 세대다. 그렇게 탄탄하게 민주주의를 쌓아온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디서부터 불평등이라는 사회문제가 도출됐을까?


그들은 80년대 민주항쟁 이후 완전히 개방된 노동시장이 있었다. 기존 노동가치보다 더 높게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탄탄대로만 걷던 그들은 딱 10년 뒤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는다. 이는 1997년 한국을 뒤흔든 IMF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 직후, 정리해고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386세대는 그들의 '생존'을 더욱 공고히 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386세대 노조의 리더들은 90년대의 '사회 연대' 및 '사회 개혁 투쟁과 절연'하는 대신, 세계화와 함께 승승장구 하기 시작한 대기업들로부터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 위해 '전투적 경제주의'에 입각한 기업 단위 교섭에 더욱 몰입했다(이철승 2018).'고.



이렇게 세대별로 각기 다른 '이념과 정체성 그리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상호 경쟁 그리고 쟁투하는 과정에서 '한국식 위계 네트워크'와 맞물리게 된다.


결국 불평등은 이렇게 확대된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취임사는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누구보다 바랬던 내게 취임사는 의미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의 취임과 동시에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계급(불평등)의 벽은 너무 높고 단단해서 허물 엄두가 나지 않는다.



386세대는 현세대의 노후 보장 수단 및 다음 세대의 복지를 위해 '자산'을 축적했다. 실제로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들의 경우, 자산을 축적하고 그것을 아랫세대로 이전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게 됨에 따라, 자산이 전승되는 만큼 빈곤도 이전된다고 한다.


작가는  과정에서 '세대 엘리트' 만들어진다고 꼬집었다. 세대의 기회를 이용해 창출한 권력 자원과 부를, 증여와 상속을 통해 자식 세대로 그대로 대물림한다는 의미다.


위계 네트워크가 뿌리내린 이유는 우리의 문화권과도 큰 연관성이 있다. 동양과 서양의 지식체계, 다른 말로 앎은 같은 단어이나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동양에서 첫 번째 단계의 앎은 위계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제 주제를 안다는 것은 신분 사회 혹은 그 위계 안에서 나의 역량과 한계를 자각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서구에서 앎은 자신과 신(기독교적 신)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불평등이 야기하는 많은 문제들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졌을 때, 신천지라는 단체가 나타났다. 신자의 비율은 신기하게도 청년의 비율이 작게는 30%~50%까지라고 보고 있다. 신천지를 연구한 종교인들에 따르면, 청년들은 기존에 교회에 다니거나, 종교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불평등한 그리고 불확실한 사회 안에서 가시적인 무언가를 잡기위한 몸부림이 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불안정한 이십대, 다가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쉽게 포교되고 다른 의미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불평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걸 아래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 


하루에 한 번 TED 강의를 찾아본다. 특히 TED를 볼 때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연관 지어 한 편을 찾아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주 오래된 강의도 보물 캐듯 발견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리처드 윌킨슨'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떤 식으로 사회를 해롭게 하는가>는 불평등의 역할을 그래프로 확인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먼저 불평등한 국가들은 일반적인 사회 현상 중 하나로 '사회적 기능 장애'가 발생함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학교를 중퇴한다거나 혹은 사회에 사형제도가 그대로 존재한다던가. 더 큰 문제는 '복지'다. 기본적으로 세금을 통해 재분배를 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전무후무 하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WHO)의 분석에 따르면,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평등한 국가에 비해 정신병의 정도가 3배 이상 높아진다는 것을 분석했다. 이렇게 불평등의 개인적인 심리학적 효과는 사회 정서의 불안정의 주요 원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면, 오늘 날 위계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은 리더가 공간과 자리 그리고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앞선 세대의 이해와 존중이 선행될 때 우리 세대의 배려도 당연시될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의 구조 프레임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나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난 누구와 어느 형태로 연대하며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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