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걸 가졌더라구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이젠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 같다. 즐기는 사람들도 이제 점점 지쳐만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린 날들이 지속된다.
이럴 때일수록 아빠를 떠올린다. 나의 아빠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건강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음에 감사할 줄 알고, 딸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삶. 몇 해 전부터 부쩍 나와 동생에게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강요하는 편이었달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우리를 아빠는 참 불편해했다.
원하는 걸 움켜쥐려고 하다 보니 뒷 목이 뻐근한 상태로 하루를 맞이한다. 매일 가시 돋친 말투와 눈 밑에 구름처럼 뒤덮인 다크서클을 본 나에게 동생은 한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지금 언니에게는 이 책이 꼭 필요한 것 같다며.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은 내 몸의 에너지와 연결돼 있다.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좌표가 설정되고 있었다. <더 해빙>에서도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에너지가 물질보다 우선이라는 거네요."
얼마 남지 않은 주머니 속 돈을 보며 불안해하다가 결국 구매하는 것보다 그냥 포기해버린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내가 가진 물질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여기에서 가짜와 진짜 부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부자가 되려면 아끼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가짜 부자와 달리 진짜 부자는 오늘을 산다. 진짜 부자에게 돈은 수단이자 하인인 반면, 가짜 부자에게 돈은 목표이자 주인이 된다.
결국 부자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건 마음가짐이었다. 가진 것이 많음에 감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빛이 난다. 그들은 본인의 비전과 삶의 방향에 맞춰 나 스스로에게 더 나아가 타인에게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비전을 가진 부자 곁에는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힘을 구성하게 된다.
<더 해빙>에서는 결과론적으로 소비에 지배당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기술이 발달하며 이성이 감정보다 합리적이라고 믿어왔기에 감정을 억눌러왔던 우리에게 다른 좌표를 제시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것이 자연 그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탐구 방법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결국 내가 돈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사람을 부자로 이끌 수 있다. 매일 난 돈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물건임에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소비하고 통장 잔고를 보며 매일 좌절했으니까.
작년 맥북을 샀을 때로 다시 돌아가보면 돈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10년 된 노트북과 4년 된 넷북은 인터넷 창 하나를 키는 시간이 딱 3분 걸렸다. 파일을 수정할 때도 커서가 움직이질 않았다. 책상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있다가 결국 소비하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남편과 나는 백수였기에 할부가 걱정되었는데도 샀다.
맥북을 사고 신기하게도 소비가 아깝지 않았다. 내게 온 이 놈이 고마울뿐. 그래서 계속 어루만지고 토닥여줬다. 소비가 기특했던 나는 맥북을 구매한 이후에 글을 써서 브런치 작가, 독립출판 작가가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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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을 아는 것. 그리고 알고 있는 길을 향해 걸어가는 행동. <더 해빙>에서는 있음을 느끼고 편안한 감정에 있을 때, 내면에 나에게 집중해보라고 말한다. 모든 상황들을 부러워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진 역량과 상황에 집중해보는 것.
어찌보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인데도 두려웠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 그리고 소비를 편안하게 여기는 마음. 모든 것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내 마음이 편안할 때, 모든 일이 물 흐르듯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