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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an 26. 2021

오래된 지역에 공간을 연 이야기

코앤텍스트의 창업일기⎜공간 선택의 기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간 창업을 시도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상권분석이라고 한다. 상권분석을 위해서 먼저 따져야 할 기본적인 것은 위치적 요인이다. 주택가인지, 오피스가인지, 대학가인지. 그만큼 일반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곳이 공간 계약의 1순위 조건이 된다. 이 곳에 얼마나 많은 통행량이 있는지, 그 통행량에 기반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려해봐야 확실한 매출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조건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통행량이 많은 곳보다는 나의 관심사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만 했다. 내 마음이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 딱 좋겠다 싶었다.



History 지역의 역사가 있는 곳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교수에 따르면, 생활 문화가 뚜렷한 도시가 브랜드 기획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매거진인 킨포크가 포틀랜드에서 나왔다는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 변화해야 한다. 킨포크는 개인의 밀접한 부분에서 일상을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킨포크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딱 10년 전, 미국 포틀랜드 교외에서 "작은 모임을 위한 안내서(A Guide for Smaill Gatherings)"라는 부제를 가지고 다채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플로리스트, 농부, 작가, 디자이너 등 사람들이 모였다. 유명인은 없지만 '사람'이 등장하는 특징을 가진 매거진.


인천의 배다리는 오래전부터 헌책방이 40곳이 될 정도로 책을 살 사람들이 붐비던 거리였다. 이 곳에 책방이 생긴 이유는 인천의 근대 교육이 싹튼 역사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인천 최초 근대 교육기관인 영화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인천 최초 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도 이 일대라고 하는 걸 보면. 


나의 헛헛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텍스트다. 누군가의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책들은 삶의 의욕이 떨어져 있을 때 원동력을 주곤 했다. 어릴 적 엄마와 손을 잡고 배다리 헌책방에 가 오랜 책의 냄새를 맡으며 다른 사람의 손길을 느껴보고 상상했던 기억이 있다. 일기장에는 이런 말들이 쓰여있었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이 샀을까?"

"페이지는 접은 이유는 뭘까?"

"어떤 경험 때문에 이 구절에 밑줄을 쳤을까?"


비밀의 숲을 탐색하는 기분이란


나와 비슷한 혹은 완전히 다른 고민을 했을지 모를 바로 전 독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의 글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개인의 고민이 무수한 친구들이 가진 공통의 고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이들간의 생각의 폭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INCH 매거진을 만들었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언젠간 전 지역의 사람들간의 INCH를 줄이는 아이템이 되길 바라며. 올해에도 INCH 매거진은 계속된다. 나의 일을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통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코앤텍스트안에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View 창이 사방으로 배치된 곳



카페 공간에 가면 무조건 창가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카페 전체를 빠르게 스캔한다. 집에서 충분히 받지 못하는 채광을 카페에서라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이번에 공간을 찾아보면서 심리적 요인이 선택에 있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뼛 속 깊이 새겨진 진화 심리와 환경 심리가 공간 선택에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공간의 심리학>을 쓴 발터 슈미트는 인간의 몸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햇빛 효과를 체득했다고 한다. 이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하고 온화한 빛은 감정을 안정시킬 뿐 아니라 생활리듬, 호르몬 분비와 체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채광이 가득한 공간, 코앤텍스트입니다


유입인구가 1층이 많을거라는 말. 왜 굳이 꼭대기층이냐는 말을 들었을 때. 딱 한 마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볕이 잘 들어야, 그리고 뻥 뚫린 공간이 있어야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포근했으면 좋겠어."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다. 그렇게 창이 사방으로 배치된 두 층을 쓰기로 결심했다. 



Communion 교감할 수 있는 곳


지난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교감하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나를 인지하고 깊은 사색에 빠지는 사람들과 개인의 이야기를 공유할 때, 우리 모두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낯설었던 사람에게 한 순간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질 때쯤 꾸준히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섯시 쯤, 해가 지는 시간의 전경


공간의 한자어는 비어있다의 공(空)과 사이 간(間)의 합성어이다. 동양에서는 빈 곳 안에 두 개 이상의 개체가 있어야 공간이 성립되는 것이다. 공간 안에 한 사람이 의미를 담은 무언가 혹은 관계 간의 교감이 있을 때, 공간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사람들이 모였을 때 정보를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감성이나 느낌을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로 인해 교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었다. 개인 간 교류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주제를 함께 공유하는 관계 안의 소속감을 공유할 때, 또 다른 교감의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코앤텍스트 안에서 누구든 생산의 주체가 되어 <나의 맥락>을 공유하고 공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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