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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May 15. 2021

어쩌다 사장이 되다

4개월 차햇병아리는 엉엉 웁니다

신입사원의 기분을 오랜만에 다시 느껴본다. 아무것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그래도 손 내밀어주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시던 팀장님. 회사 구조를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먼저 들어와서 일하고 있던 같은 동기 인턴 친구의 부서별 설명. 그리고 인수인계까지.


그 누구에게도 인수인계를 받은 적이 없는 초보 사장님 4개월 차.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상처에 물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리는 그 아픔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영업을 시작했을까.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왜 한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그날도 초심을 자꾸 잃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어쩌다 사장이 되다


사장님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낯간지럽고 부끄럽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장은 가게를 잘 운영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책임이 너무나도 많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주는 것. 월급과 동시에 식사비까지 책정해주어야 하는 것. 지금 나는 그 무엇도 실행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사장 자격이 없다. 우리가 버는 족족 기존에 긁어뒀던 기자재 비용, 재료비 등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다 보니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다. 정말 '어쩌다 사장이 된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게 됐다. 최근 꿈에서 과거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정신 차려. 카페 운영한다고 다 좋을 거 같아?'


분주한 그들의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사장님 [출처] TVN, 어쩌다 사장


열흘 간 화천의 한 슈퍼마켓의 어쩌다 사장이 된 조인성과 차태현. 처음에는 그다지 프로그램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조인성을 좋아하는 팬심이 작동해 몇 번 보긴 했지만, 체험형 버라이어티겠지 하고 생각했다. 한 시골의 동네 슈퍼인 만큼 주민들은 슈퍼에 자주 방문했고, 사장이 된 두 연예인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두 사장님. 일곱 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며 우습게도 나에게 모습이 오버랩됐다. 매일 같은 시간 가게 문을 오픈하고 밤늦게 문을 닫는 그 행위. 가게를 쓸고 닦고, 행여나 먼지가 쌓여있을까 손님들이 불편하진 않을까 살피는 모습. 여느 사장님의 아침 풍경이겠지.


성실한 사람들을 위한 세계


열흘이 된 마지막 날. 마무리 설거지를 하던 중, 한 손님이 자리에 앉았다. 따스하게 두 사람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은 가게 구석구석을 보고 있었다. 열흘 동안 가게 안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 작은 가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녀는 지난 시간을 그리고 있었다.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넌지시 대화를 건네었는데 질문이 조금 심상치 않았다. 그 누구도 두 사장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


"이렇게 늦게까지 하니까 힘드시죠?"

"몇 시에 오픈하고 몇 시에 문 닫아요?"


40년 그리고 365일을 변함없이 한 자리에서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늦게 문을 닫았던 사장님 앞에서 그 순간 열흘 간 사장님이 된 둘은 많은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어쩌다 사장이 되지 못했더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여러 순간들과 수많은 감정들.


그녀의 눈빛에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그득 쌓여있었다 [출처] TVN, 어쩌다 사장


'나도 카페나 해볼까?' '나도 가게 한 번 차려볼까?' 요즘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며 말리고 싶을 정도다. 오히려 회사보다 더 힘들고 더 고된 걸 알게 됐으니까. 물론 간섭하는 상사도 없어서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해야 할 모든 일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어쩌다 사장 4개월 차


자영업을 시작한다는 건 많은 걸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관계를 편안하게 마주할 수 없다는 게 제일 컸다. 공간이 생겨서 잘 만날 수 없었던 사람과 만남을 가지면서도 좋아하는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리고 챙기고 싶던 기념일을 쉽게 챙기지 못한다. 매일 가게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심지어 그들을 가게로 찾아오게 만든다. 가게 운영은 그만큼 성실한 사람들이 잘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힘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을.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하나. 이 공간은 정말 나의 얼굴이 되었다. 누군가 왔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고 그 따스함을 가져갈 수 있어야 했다. “어쩌다 사장”의 사장님은 다른 듯 비슷한 생각을 하셨겠지. 40년간 가족처럼 가까운 주민들에게 행여나 부족한 점은 없었을까, 매일 보살펴 온 나의 가게는 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 내 공간에서 두 사장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사장이 된 나는 요즘 행복면서도 행복하지 않다. 내 공간을 사랑해주면 또 행복하고, 또 어느 날에 발걸음이 끊기면 또 내가 뭘 잘못했나 나를 자책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모든 원인이 나인 것만 같아서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했다. [어쩌다 사장]에 나온 진짜 사장님의 표정은 평정심이 있는 얼굴이었다. 온화하고 따뜻한 얼굴. 내가 다시 찾는 가게를 떠올렸을 때, 바로 사장님의 얼굴이 아닐까.


잘하려고 하는데 목표를 두지 말아야지. 내 마음을 그대로, 온전히 가지고, 그리고 시간의 힘을 믿어야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야지.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열정과 재능 외에도 시간의 힘을 믿는 베짱이 필요한 법이다. 하루 아침에 쓸 수 있는 책도,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있는 영화도, 하루 아침에 짓는 건물도, 하루 아침에 성공하는 가게도, 하루 아침에 익힐 수 있는 기술도 없다. 몇 번은 운이 좋아 빠르게 이룰 수 있겠지. 하지만 운이 다했을 때는 결국 시간이 이긴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시간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불행해진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한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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