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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Mar 09. 2023

작은 선택이 나를 보여준다 I 덕질의 재발견

아침을 깨우는 한 문장


당신이 어떤 것 하나를 하는 방식이 곧 당신이 모든 것을 하는 방식이다.

- <백만장자 시크릿>, 하브 애커



오랜만에 비포선라이즈를 켰다. 한 여섯 번쯤 봤나. 습관처럼 켜는 탓에 내 마음속 명대사도 몇 개 있다. '너랑 더 얘기하고 싶어. 네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지만 너랑 나랑 잘 통하는 것 같아. 그렇지?' 기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그 둘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시끄러운 승객들 때문이 아니라 셀린과 제시가 보고 있던 바로 그 책 때문이었다. 제시는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을 보여주었다. 셀린은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보고 있었고. 각각 둘은 완벽하게 다른 서로의 책을 보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어리던 줄리 델피. 미소가 너무 예뻐!



작은 행동이 나를 드러낸다


스마트폰이 창궐하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심심치 않게 종이 신문을 펼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떤 신문을 보는지 매체 명을 살피곤 했다. 종류만 보면 우리는 그가 진보적 혹은 보수적 성향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내 취향을 반영한다. 나다운 것,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궁극의 무엇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다.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취향을 운운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 역시도 나만의 끝장 취향이 존재했다.



지난주 <나 혼자 산다>에 나온 배우 이유진의 플레이리스트가 반가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리고 Chet Baker의 노래를 틀다니. 가만히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노래를 듣는 그의 모습에서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그렇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던 것 같다. 


나 역시 음악을 편식한다. 편식을 하지만 주재료를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끝도 없는 덕질을 시작한다. 덕질을 통해 그 사람의 생애를 알게 되고, 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아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알게 된다.  



덕질은 끝날 수 없다


무언가를 쓰기 전에 핸드폰을 켜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한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간다. 요즘 플레이리스트들은 참 착하다. 내가 선택한 몇 개의 곡을 통해 나의 입맛에 착착 맞는 맞춤 믹스를 추천해 준다. 끝없는 편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다니. 하루에 하나씩 켜서 듣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재미있고 편리하지만 가끔은 조금 무섭다. 우리 가족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이라니. 알고리즘을 통해 결과적으로 나의 취향이 강화되고 있는 게 보인다. 너무 편향적으로 변해가는 건가 싶다가도 좋아하는 음악이 생기게 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에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다.


챗 베이커(chet Baker)의 My Funny Valentine을 시작으로 생각보다 재즈가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의 재즈 사랑이 시작되었다. 챗 베이커를 통해 동시대에 살았던 빌에반스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된 순간 나의 최애는 빌 에반스가 되어버렸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숨겨져 있던 감각이 살아난다. 표현할 수 없는 이면의 감각을 세밀한 연주를 통해 말해주고 있는 걸 듣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의 피아노 연주처럼 나만 할 수 있는 무기가 생기길 바라게 된다. 



인생 2막을 여는 나의 결혼 때 역시 빌 에반스의 곡이 나의 입장곡이었다. 남편 친구들이 연주해 주는 곡을 들으며 감미롭게, 아름답게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그날의 기억. 재즈 피아노 연주자였던 빌 에반스의 연주는 클래식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드뷔시나 라벨 같은 인상파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빌 에반스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재즈의 자유로운 연주에 더해 빌 에반스만의 감정이입을 곡 안에 듬뿍 담았기 때문었다. 자유로운 감성파 빌에반스와 나의 가치가 맞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과거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다. 그때 내 취향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내가 왜 좋아하는지, 왜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추천 곡은

� Bill Evens - Walts For Debby 

빌 에반스가 당시 4살이던 조카 데비를 보고 쓴 곡. 푸르른 언덕에서 머리칼을 흩날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그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담긴 곡.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우울하거나 힘든 날에 이 곡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이 곡은 193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Babes in Arms'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 여주인공 빌리 스미스가 남주인공 밸런타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였다. 우수에 찬 슬픈 목소리로 부른 그의 밸런타인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재즈 #빌에반스 #취향 #취향고백 #비포선라이즈 #선택 #결정 #행동 #나는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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