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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23. 2024

만질 수 없어 슬픈 당신에 [메를로 퐁티]가 던지는 말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하고 싶은 작은 위로


가끔 궁금했던 질문을 요즘 매일 같이 한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기에 답이 없다고 할 수도 있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엄청 많다. 지금 내 영혼은 몸 안에 있겠지. 그렇다면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난 할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은 엄마 곁에 있고, 내일은 삼촌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났으면 좋겠고.


우리 곁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보이진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는다.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며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선호하게 된다. 합리주의적 관점이 세상을 발전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 같이 성장하는 세상 속에서 위로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간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근본 존재에 대한 의문이 많아진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갑자기 훌쩍 다가온 가을 하늘과 인사해 본 오늘



감각의 언어로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우리



누군가의 죽음은 단순한 사라짐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가 다른 방식으로 재편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포옹하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내 등을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 한 주 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그녀의 손길 하나만으로 풀리던 그 순간. 쓰다듬고 만지는 그 순간이 없어지는 것 자체가 큰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감각의 언어로 그녀와 나는 대화할 수 없다. 


메를로퐁티는 감각적인 모든 것들이 교차하고 얽힘 하는 가운데 있다는 의미에서 존재론적인 '살'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살은 우리의 생생한 실제 경험 속에 퍼져 있다. 수사학에서 '키아즘'이라는 용어를 메를로퐁티는 '살' 존재론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이를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수사학에서의 키아즘은 하나의 문장이나 문장들 전체 속에서 교차 효과에 의해 생성되는 의미를 활용한 수사학 기법이다.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살 존재론'의 관점으로 키아즘을 해석하였다.


-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교차와 서로 얽힘에 의한 봄

- 만지는 자와 만져지는 것의 교차와 서로 얽힘에 대한 만짐


거친 그녀의 손에 붙은 얇은 살. 그녀와 나의 맞닿음으로 함께 교감했던 오랜 시간들.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온기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감각의 언어로 대화할 수 없는 우리는 더 이상 연결될 수 없을까?


답답할 때 가면 좋은 곳 [예단포선착장]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 낸다는 [메를로퐁티]


할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엄마는 남편에게 물었다. "정말 영혼이라는 게 있을까?" 간절한 엄마의 질문을 듣곤 진짜 있을 것 같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만질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죽음은 새로운 형태의 의미의 변화를 가져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큰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지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울 것이다. 이 것 또한, 우리 몸이 세계와 맺어온 관계의 총체적 변화와 마찬가지다. 분명,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기억하고, 관계로 인해 형성된 세계를 살고 있다. 이 것이 바로 그와의 연결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기억의 연결을 통해 서로를 그리고 나를 위로하자

완전히 동일한 경험을 할 순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공유한 시간 속에서 서로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슬픔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하며 아파할지라도, 각자의 경험은 결국 연결되게 된다. 결국, 당신의 슬픔은 온전히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나의 슬픔을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 영혼이 지속될 수 있다.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바라보자

'현존의 장' 속에서 과거와 나, 현재와 미래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죽음을 선형적 시간의 끝으로 볼 수 없다. 형태나 구조는 비교적 자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비선형적, 역동적인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게슈탈트 이론에 따르면,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변화의 일부로 이해하고, 남아있는 우리가 지금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통해 영혼과의 대화를 노력해야 한다.





답답할 때 가면 좋은 곳 2 [롱비치파크]


그는 전통적인 이원론적인 관점인 주체-객체를 넘어, 상호적인 관점에 인간 경험을 설명하고자 한 철학자였다. 그의 주저 <지각의 현상학>은 1945년에 출간되었고, 나아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사후에 출간하며 신체와 세계가 맺는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한 그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본인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그 덕분일까? 현대 철학, 심리학, 그 외 예술 이론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메를로 퐁티. 그는 알제 전투 중 고문 사용을 한 프랑스에 대한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한 항의로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손을 잡고 함께 편지를 읽던 그날이 떠올랐다. 손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던 말. 자식을 사랑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떠올라 모두가 눈물을 흘렸던 시간. 결국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그녀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혼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 참고자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메를로 퐁티

<말>, 정지은

<자연 또는 침묵의 세계>, 메를로 퐁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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