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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21. 2024

[월든]에서 발견한 외로움의 역설

고독을 통해 발견하는 진정한 나



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사람은 늘 혼자다.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게 2024년의 오늘이다. 실제로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성으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다. 타인과 단절됨으로서 느끼는 고립감,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표현한다.


외로움과 고립의 연결고리


다시 말해, 외로움은 사회적 허기다. 사회적인 관계가 끊어지고, 그들에게서 받는 인정이나 사랑이 사라지게 되면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우울하게 되면서 자신을 사회적으로 고립 시키게 된다.


외로움(loneliness)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정의 자체에 관계 결핍에서 비롯된 괴로움이 포함되어 있다. 갈망은 외로움의 필수 요소로, 내가 마음 쓰는 어떤 이와 나 사이의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간극을 뛰어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즉,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의 상황을 괴로워하며 지금의 환경을 만족하기 어렵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 안간힘을 썼던 20대때는 매우 쉽게 외로움을 느꼈다. 나를 완벽하게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더 많은 관계 안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마리 토끼도 제대로 못 잡고 모두 놓치고 30대가 되었다. 관계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의 밀도를 체감하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지금껏 내가 키워왔다는 걸 이해했다.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


우리는 지금 3가구 중 1가구가 1인가구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사회 변화를 의미하면서도, 외로움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 상대의 부재를 경험하며 유대감이 점점 떨어진다는 느낌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외로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외로움 수치'는 놀랄만큼 안정적으로 유지된 편이다. 어쩌면 혼자라는 사실보다 혼자인 이유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오히려 스스로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현대인은 알고 있다. 끊임없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본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오두막을 지었던 숲 속


<외로움의 철학>에 따르면, 실제 친구 수가 자신이 이상적으라고 생각하는 친구 수보다 더 많으면 외로움이 가중된다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의 일상화로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지만, 수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히려 진정한 관계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온라인에서의 피상적인 소통이 깊이 있는 대화를 대체하기란 어렵다.


이제 세상이 그대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말고 그대가 자기 자신과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라. 자기 자신에게로 달아나라. 그러나 먼저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 그대가 자기 자신을 지배할 줄 모른다면 자기 손에 자기를 맡기는 것은 미친 짓이다. 고독 속에서도 사람들과 더불어 있을 때처럼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법이니. - 몽테뉴




나 혼자 살기를 결심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


미국의 한 남자는 작은 오두막에서 2년 간 자급자족하며 산 자서전을 출간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아주 오래 전 '나 혼자' 사는 삶을 스스로 결심하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회를 얻었다. 제도화된 사회에서 벗어나 자발적인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면의 공간을 만들자

혼자 잘 노는 사람들이 굉장히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독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소유를 통해 나를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내 집을 사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다. 고독을 즐기는 시간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준다. 즉, 고독이 곧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오두막을 짓고, 내면의 공간 안에서 나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 <월든> 130p,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저술했던 오두막을 복원한 모습


사람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고독을 즐길 수 있다

고독을 즐기게 되면 타인이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늘 고독하다. 외로움과 마찬가지로 고독도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어도 느낄 수 있다. 스스로가 주위를 격리한다면 말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타자의 시선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게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 <월든> 194p,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쓴 1845년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대안적 삶'의 대표 주자로 자리를 잡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는 자연에서 단순하게 오두막을 짓고 산 철학자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교사로 일하면서 당시 체벌을 거부하며 교사를 사직한다. 원칙을 지키는 강직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사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1846년에는 멕시코-미국 전쟁 초기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며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마틴 루터킹과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준 '시민 불복종'이라는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 인두세 납부는 '국민들의 세금이 노예제도 유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에 납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흔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소로의 저작은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은 오두막에서 충분한 고독을 즐긴 덕분일까? 그의 사상은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삶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고 있다. 





� 참고자료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수상록>,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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