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뭘까?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by 도연

채리에게


채리가 요즘 요리를 하는구나! 듣던 중 가장 놀라운 소식이야. 너는 혼자 살 때도 엄마가 소분해주신 국을 해동해먹고, 반찬도 모두 집에서 가져온 걸로 밥을 야무지게 먹곤 하던 사람이 아니냐! 네가 요리를 하다니! 역시 요리왕과 함께 살더니 영향을 받은 걸까. 오빠(너의 남편) 요리 사진을 보면 정말 꼭 한입 얻어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어. 파나마까지 쉽게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야. 아니 최소한 일본 정도의 거리였다면 난 아마 두어 달에 한 번씩은 너희 집에 놀러 갔을지도 모를 텐데. 중남미라니.. 아쉽다 아쉬워!!(하지만 네 음식은 아직까지 얻어먹고 싶진 않아ㅋㅋ). 나도 토요일엔 요리를 했어. 반찬을 서너 가지 만들고, 국을 끓이고 제육볶음까지 동시에 했어. 요리를 하면 말이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 장을 보면서 스트레스도 은근히 풀리고 말이야. 생각을 해보니까 자취를, 그러니까 독립을 한 지 15년이나 되었더라고. 그러다 보니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밥도 하고 요리도 하게 된 것 같아. 너는 요리를 하게 된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무기력함은 벗어났다니 축하해. 내가 파나마로 여행 갈 때쯤엔 네가 김치볶음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게. 난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거든. 계란탕도 곁들여주길.


어제는 영화를 봤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영화관을 몇 달을 못 갔는데 꼭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했거든, 그런데 영화관에 아무도 없더라고, 직원도 없고 내가 문을 열고 영화관에 입장했어. 뜻밖에 안전지대에 들어온 느낌이었어. 파나마처럼 집 밖으로 완전히 못 나가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괴로울까... 상상만 해도 힘들다. 여긴 위험하다고 해도 각자 위생 지켜가며 조금씩 외출하고 다니거든. 여행 못 간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안전한 한국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봐. 뭐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 :)


아무튼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어제 본 영화는 '사랑이 뭘까?'란 일본 영화야. 여주(테루코 짱)가 남주(마모루 짱)를 좋아하는데 둘은 사귀는 사이는 아냐. 그런데 여주가 남주를 너무 좋아해서 집에 놀러 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남자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 나가고, 남자가 원할 때 섹스를 하는 식의 대단한 병신 같은 짝사랑을 하는 내용이야.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병신 같은 짝사랑을 하는 남자 캐릭터가 한 명 더 나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남자 친구가 등장인물들의 사랑방식이 '최악'이라며 비판했고, '남자는 그나마 낫다.'라고 하더라고. 그만큼 사람들의 인식에 남자는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고,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면 '왜 저렇게 까지 하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남자도 그렇게 헌신하다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상처 받고 아픈 건 매한가지일 텐데... 짝사랑엔 크게 취미가 없지만 연애를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나도 베푸는 사람 쪽에 가깝기 때문인지 그 감정 자체는 이해가 되더라고.(그래도 난 짝사랑은 못하겠어. 누가 날 먼저 좋아해야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쪽이거든)


요즘 나는 말이야, 일반적인 연애나 사랑의 형태를 많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지(유별난 연애 , 이별 전문가..) 그런 오히려 지금 나의 연애는 자극이 없고 아주 평범해. 뭐가 다 이렇게 쉽지? 하는 느낌이야. (이 편지가 만천하에 공개된다고 생각하니까 살짝 말을 아끼게 되네, 이것 또한 공개 펜팔의 묘미겠지?)

이건 몇 번이나 물어봤던 것이지만 오빠를 만나면서 '이 사람이다. 싶은 느낌이 들었니?' 아무래도 난 미혼에다 연애소설을 쓰고 있고,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사랑, 연애, 감정이 제일 궁금하고 관심이 많아. 그래서 결혼할 땐 어떤 마음이었는지, 출산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도 많이 궁금해. 그리고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 까마득하고 두려워 죽겠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익숙한 내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의 밸런스는 어떻게 조절해야 할 것인지... 네가 육아를 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영혼을 돌보는 일처럼 말이야.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우울증에 걸려버리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별 걱정을 다하고 있지? 나는 언젠가부터 걱정충이 되었다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 계속 길어지네. 영화를 보고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봐 :) 영화 제목이 '사랑이 뭘까?'였어.


'나 혼자'만 생각하고 '나만' 사랑하고 '내 인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누군가'와의 평생을 꾸리고 '한 아이'를 걷게 하고, 말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사랑을 하는 너에게 조금 유치한 이야기들일까 봐 부끄러움이 생기네. 오늘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어. 너와의 교환일기를 시작으로 다시 매일매일을 김치낙지죽 같은 하루로 만들어보려고 해. 하지만 난 삼계죽이 제일 좋더라. 그럼 20000. (90년대 감성 RG?)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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