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우린 참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공통 주제가 몇 가지 있지. 그중 단언컨대 우릴 이어준 건 술이 아니었을까 싶어. 물론 너와 코가 비뚜러 져라 마신 적이 없는 것 같지만, 네 블로그를 처음 봤을 때 매일 맛있는 안주와 술을 먹은 포스팅을 하는 너를 보며 '이 사람은 분명히 나와 같은 결'이라고 확신했거든.
나는 중독에 약한 사람이야. 의지도 약하고,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데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건 역시나 술이야. 밥을 굶으라면 할 수 있고, 연애를 끊으라면 그것마저도 할 수 있어. 금욕생활이라면 자신 있거든. 담배도 끊으라치면 단번에 끊어버리는 편인데 유난히 못 끊는 게 바로 술이야. 너무 과음을 심하게 해서 다음날 토를 하다 결국 탈수 증세가 와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그날 밤에도 나는 술을 마셨어. 이 정도면 거의 미친 사람 같겠지. 그 정도로 난 술을 끊기가 너무나도 힘들어. 네가 임신을 하면서 일 년 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건 정말... 대단해. 나는 문득 내가 혹시 임신을 한다면? 일 년 동안 술을 참을 수 있을 건가? 란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난 안될 것 같아. 와인이라도 홀짝여야 할 것 같아... 물론 소주 한잔 먹을 거면 안 먹는 게 낫지. 그런데 와인은 한잔 정도 마시는 건 좋더라고. 잠도 잘 오고 긴장했던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나른해지는 그 기분이 좋아. 술자리가 좋다? 이건 나의 음주문화에 위법되는 멘트야. 술자리가 아닌 '술'이 좋아 나는. 나는 혼자서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우면서 소주를 마시고 국밥집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시켜 비우고 나오는 사람이었으니까. 뭐 거의 술 마시는 습관으로 치면 아저씨라고 볼 수 있지.
어제는 운동과 섹시함에 대한 얘길 했지만 오늘은 온통 건강을 해치는 얘기뿐이네. 하지만 쾌락들을 참아가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을 선호해. 최근 간헐적 단식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매일 먹던 술을 조금 줄였어. 매일 집에서 혼술을 했었거든. 건강 때문은 아니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새벽까지 글을 쓰다 잠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밤마다 소주를 마실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이가 들어 그런지, 집순이 성향 때문인지 얼마쯤 먹고 취할 때가 되면 집에 빨리 가서 눕고 싶은 생각뿐이야. 이래서 밖에서 먹는 술은 힘들고, 나는 방술, 집 술이 좋아. 나이가 들어서도 매일 술을 마시고 놀고 싶은데 그러려면 지금부터 건강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이야. 숙취가 너무 심하니까 이대로 계속 술을 먹다간 죽어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을 자주 하거든. 며칠 전 숙취가 심했다는 날에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깼는데, 친구가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는 바람에 어쩌지... 하다가 위생봉지 하나를 뜯어서 테라스로 나가서 속을 비웠단다... 얼마나 자괴감이 들던지. 나란 년....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내가 중간이 없는 스타일이라... 알지? (ㅋㅋ) 이렇게 말하다가 보니까 우린 정말 술 앞에선 대단한 열정가들이 아닌가 싶어. 하지만 이제는 '적당히' 마시고 다음날 멀쩡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잘해보자. 시호의 아침밥을 챙기지 않아도 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또다시 '죽도록' 마셔보는 거야!
추진력이 좋다는 걸 검증했다는 말이 괜히 으쓱 해져.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는 거니까. 성격이 급하고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되는 성격이라 그런데, 어릴 땐 무모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이젠 다들 박수를 쳐주는 것 같아. 언제나 부딪히고 도전하고 뜨거움을 느끼는 것을 나이가 더 들어서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지금도 a4 80장 분량의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두려움이 크지만 또다시 부딪혀 보고, 칼을 들었으니 무라도 자르고 돌아와 볼게.
오늘처럼 술 얘길 한 날엔 역시 술을 먹어줘야겠지?
오늘은 곰장어에 소주를 마실 거야. 2차로는 닭발이나 네가 좋아하는 순댓국집에서 술국을 시켜도 좋겠다. 내일은 아마도 숙취에 시달리며 또다시 난 자괴감을 느끼겠지. 그리곤 술이 깨면서 식욕이 폭발하고 햄버거를 시켜먹으며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될 테야. 어쩜 이런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변태야 변태!
'아무튼, 술'은 읽어볼게. 우리 같은 애주가가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구려.
그럼 20000.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