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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l 24. 2020

옆집 남자와의 야릇한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제목이 좀 자극적인가? 네 편지 제목에 형용사 하나를 붙였더니 19금이 되어버렸군. 옆집 남자의 관찰일지 재밌었어. 옆집 남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내렸지. 일몰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욕망 같은 것이 느껴져서 좋아. 가령 이런 거지,


1. 채리 너는 순대국밥을 먹어야 행복한 사람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지.

2. 그래서 기분이 꿀꿀하다 싶으면 기어코 오늘은 순대국밥을 먹어서 기분을 환기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3. 그래서 어떻게든 순대 국밥을 먹게 되고, 아 역시 인생 살만하단 말이야. 하면서 배를 두드리곤 행복감에 젖어들게 돼.


이렇게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걸 실행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더 열심히 행복을 위한 조건들을 많이 만들어둬야겠다.’ 같은 생각이 들거든. 그런데 웬걸 옆집 남자는 가슴 달린 생물체에겐 섹시함을 못 느끼는 취향일지도 모른다니,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기분이로군. ㅋㅋ 이번 주는 나도 나의 행복을 위해 주말 저녁에 혼자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러 갈까 해. 텀블러에 와인도 담아가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씩. 일몰을 보러 가는 일도 좋아하지만 이번 주 서울은 비가 오는 장마기간이라서, 아무래도 일몰은 못 볼 테니 비 오는 거리라도 만끽해보려고. 이 정도면 아주 행복 회로 풀가동한 거 아니냐. ㅎㅎ (현실은 주말에 친구 불러내서 소주를 왕창 마신 후 속 아프다며 걀걀 대다가 예술 영화고 나발이고 짬뽕을 시켜 해장을 하고 잠만 잘지도 몰라. 그런데 또 이것은 이것대로 행복할 것 같지?)


참, 지난번에 내가 요즘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알려주기로 했지? 무려 '야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 이 글은 또 어떻게 모여지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쓴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있어. 섹슈얼한 이야기들, 야한데 웃긴 사연,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는 감정 같은 것들 말이야. 음 그런데 이걸 자꾸 쓰고 있으려니 일상생활이 좀 이상해져... 하루 종일 야한 상상만 하거든. 상상만으로 그치는 건 너무 아쉬우니까.. 실행도 종종 해보고 말이야. 후후. 나는 첫 경험이 ‘스무 살 모텔에서’라고 기억하고 있었어. 무려 첫 키스와 첫 섹스를 동시에 했지. 얼마 전 첫 섹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른 그날의 기억. 모텔이 아니라, ‘남자 친구의 집’이었어. 16년이 지나고 나니, 그날의 기억도 편집되었고, 심지어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내가 너무 웃긴 거야. 혼자 쿡쿡대고 웃었어. 그때는 그게 얼마나 큰 일이었게. 세상에는 말 못 할 비밀이었고,. 더 이상 순수한 처녀가 아니란 생각에 조금 더러워졌다고 생각했던 스무 살.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제대로 된 피임법과, 첫 경험을 준비할 수 있는 성숙한 교육을 받았더라면. 그때의 내가 더러워졌다는 자괴감에 빠져 집에 오는 버스에서 울지는 않았을 텐데. 뭐 그런 생각. 서른여섯에, 무려 연애까지 하고 있는 미혼여성인 내가 야한 짓을 하고 야한 이야길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편지로 쓰고 있으니 민망함은 감출 수가 없군. 예전에 잠깐 들었던 기억으론 다니엘 오빠가(남편) 네 첫 키스... 상대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아니라면 오빠가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라며 ^^

서둘러 편지를 마친다. ㅋ ㅋ


기혼 여성인 채리야, 야한 밤 보내세요 :)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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