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네가 확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가슴이 철렁. 불과 며칠 전까지도 이렇게 코로나가 심한데, 이기적이지만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이 확진자가 없어서 다행이란 얘길 친구한테 했거든. 그런데 채리가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이, 먼 타국에서, 그것도 확진자가 넘쳐나 병상도 없는 그곳에서...
그래도 다행인 건 언제나 그렇듯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비가 오는 날은 손을 내밀어 비를 맞고, 창가로 고개를 쭉 빼고 사랑하는 이와 얼굴을 마주 보곤 한다는 글을 읽고 '참 채리답다'라는 생각을 했어. 아픈 것도 고통이지만 외로운 것이 가장 큰 고통일 텐데, 그래도 기특하게도 음성이 나와준 시호와 든든한 다니엘 오빠가 곁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네가 알다시피 로맨스 드라마 중독자인 내가 최근에는 '별에서 온 그대'를 정주행 했거든? 마지막 회에 천송이의 대사가 내 심금을 울렸어. 천송이가 도민준이 떠나고 나서 가족들 앞에서 펑펑 울면서 말해.
'도민준이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안고 싶고, 만지고 싶다고.' 사랑이란 그런 거 같다. 보고 싶고, 안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 말이야. 네가 시호와 떨어져 있는 동안 고작 벽 하나를 두고서도 시호를 안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 ㅜㅜ 엉엉... (쓰면서 울었음, 공감대가 넘쳐나는 편)
인스타로 미리 소식을 봤겠지만 지난 주말에 대장내시경을 하고, 입원까지... 삼일을 꼬박 금식을 했더니 눈물밖에 안나더라고. 아니 하루만 참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왜 애처럼 울기나 했을까... 좁아터진 병실 침대에서 내편과(아무래도 남편이라는 말이 나는 싫더라. '내편'이 좋아) 몸을 구겨가며 둘이 누워있는데 그런 생각을 했어.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인생에선 가장 중요한 일이로군'
아무래도 먹는 것에 돈을 아끼면 안 되겠어, 라는 결심과 함께 퇴원을 했어. 의사는 물론 일주일 내내 되도록 죽만 먹으라는 충고를 강하게 했지만 (이런 말 해도 되나, 상상이니 괜찮겠지) '조카!'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일주일 내내 빨간색 음식은 먹지 않았어. 아무튼 그렇게 잘 참고 있는데 네 블로그를 어제 봐버린 거야. 그래서 약이 하루치 남았지만 역시나 '의사 조카!' 하는 생각과 함께 불족발을 시켜먹었다.... 는 이야길 이렇게 길게 해 버렸네.
다음 주면 벌써 크리스마스구나, 올해 연말은 시끌벅적한 파티도,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도 없지만 우리만의 연말을 특별하게 보내자. 크리스마스가 별거 있냐. 불족발에 소맥 한잔.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 삼겹살에 고추 마늘 딱 올려서 한쌈 먹는 거. 그리고 소주 한잔 탁 털어 넣는 거. 기름기 좔좔 흐르는 치킨에 맥주를 식도가 따갑도록 마셔대는 거. 그런 게 크리스마스고 행복이지. 안 그래? (사랑 타령하다가 결국 소주 타령으로 끝나는)
완치를 받았으니 파나마 시누이 네 서 며칠 잘 머무르다, 과테말라로 무사히 잘 다다르길.
그곳에서도 너만이 만들 수 있는 보장된 행복들을 만들어가며, 건강히 사랑하는 이와 시호를 마음껏 안고 만지는 시간이길 바랄게.
ps. 아무래도 답장을 받을 때면 우리가 서른일곱 살이 되어 있을 것 같아, 미리 축하인사 보내본다.
Merry Christmas, 그리고 Happy New Year!
시간 나면 답장 좀.
인제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