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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23. 2021

결혼은 현실, 더럽게 비현실적인 현실

비혼 엔딩_1


뭐라고요? 결혼은 현실이라고요? 제일 비현실 적인 게 결혼 문화 아닌가요.



비현실적으로 결혼하기



 오래전부터 결혼에 대해선 나만의 확고한 철학과 로망이 있었다. 호들갑 떨지 않고, 조용하게 결혼하고 싶었다. 그것이 집 앞마당 결혼식이거나, 강원도 어느 산골 메밀밭에서 조용히 비공개 결혼식을 올리던 셀럽들처럼 말이다. 친구들은 이런 나의 비공개 결혼의 로망을 얘기하면 코웃음 치며, '그럴 거면 우리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결혼하라'라고 장난 삼아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얘길 듣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런 결혼은 결국 양가 부모님들이 반대해서 그럴 수는 없을 거라 말했다. 왜냐하면 부모 본인들이 뿌린 축의금을 회수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들 했다. 그놈의 현실. 참 더럽게 비현실 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으로만 들은 서른여섯 살의 노(no) 처녀는 결국 한 가지 결론으로 도달했다. '내가 원하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그럼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군.' 남자 집에서 얼마나 해줄 수 있대? 300만 원도 넘는 신상 냉장고와 유명 브랜드 세탁기 건조기 세트 (또 300) 정도는 장만해가야 눈치가 보이지 않을 거라나. 아무튼 이 별나 빠진 한국식 결혼 문화는 나에게 반감을 가져왔고, 맞지도 않는 몸에 꽉 붙은 원피스를 입는 것처럼, 나와는 맞지 않는 남자를 여럿 만나고 그 관계가 다 끝나고 나니 "결혼은 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했다. 몸에 맞는 옷을 살 생각보다는, "원피스는 다시는 안 입어야지!" 라며 다짐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이렇게 초고속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내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해주는 지금의 내편 덕분, 그리고 역시나 내 결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시는 양가 부모님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결혼을 얼마나 빨리했냐면 '결혼 하자'라는 약속을 한 후로 두 달 만에 혼인신고까지 끝이 났다. 연애를 한지는 8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한지는 2개월 만에 부부가 된 것이다. 너무 경솔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나는 내 선택에 자신이 있고 나는 나를 믿는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므로, 이 선택이 설령 경솔한 실수가 될지언정, 후회하지 않을 거라 했다.


 비공개 결혼을 했다. 정말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했다. 양가 가족들에겐 혼인신고 며칠 전 소식을 알렸고, (아직도 내가 결혼한 지 모르는 가족들이 있을걸?) 최측근마저도 내 결혼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되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집 앞마당에서 조촐히 가족식을 하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둘이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나누어 꼈고, 강원도 어느 면사무소에서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기분이 참... 비현실적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 현실의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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