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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19. 2021

에세이 쓰고 싶어요

1. 회고


작년 한 해, 2019년 연말쯤부터 시작한 소설을 2020년이 되고 날이 더워 반팔을 입고 다닐 때쯤 3차 수정을 마쳤다. 앞으로는 편집자를 만나 수정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손을 떼었는데, 이후 하반기 동안은 극본이라는 장르에 도전을 했다. 소설도 처음, 극본도 처음이었기에 일 년 내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은 소설책만 읽었다. 하루에 한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식의 루틴을 반복했으며 작가들이 평생 한 번은 꼭 쓴다는 자전소설들을 모두 꺼내와 무작정 읽어댔다. 덕분에 기억이 나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나라는 사람은 짧게 집중하고 읽거나 본 것들은 주로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글들은 어딘가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였으리라. 그리곤 소설을 마무리한 뒤에 극본 쓰기 연습을 해야 했기에, 방송이 되어 유명했던 드라마 몇 편의 전체 대본과 영화의 시나리오들을 받아 읽었다. 대본을 읽고 영상을 보고, 쓰여진 글이 어떻게 영상화가 되었는지. 혹은 영상이 어떻게 글로 표현되었는지를 비교해보았고, 요즘 인기 있다는 웹툰들 Best 몇 가지를 보며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봤다. 웹툰을 읽고, 다시 그것을 대본화 하는 작업을 하면서 분량과 호흡 연습을 했다. 한두해 연습하고 써본 들 잘 써지겠냐만은, 어쨌든 그런 것들은 모두 기술적인 측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극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때가 많지만 말이다.



2. 개인사


그러는 동안 운 좋게 계약을 몇 건 했고, 2021년에는 2년 동안 했던 작업들이 어느 정도는 수면 위로 올라오길 바라고 있는 중이다. 혼자서만 글을 쓰고 판단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또 혼자서 일어나길 반복해야 했던 날들과 다르게 누군가와 의논을 할 수 있고, 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아군이 생긴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 기분이 취한 나머지 개인적인 글을 쓰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개인적인 일상생활의 감동적인 사건들이나 콘텐츠를 보고 난 후의 감정, 그리고 일상의 기분들 생각들 가치관 같은 것들. 결혼을 하고 강원도로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먹고사는 일에 바빴던 나는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나 디자인 외주 알바 같은 것들을 쉼 없이 했고, 덕분에 책 읽는 시간이나 글을 쓰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나만의 고립된 시간이 너무나도 절실해졌다. 그사이 몇몇 사람들에게 '언제 또 책이 나와?' 라거나, 글을 요즘도 쓰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했는데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글을 묵묵히 쓰고 있었지만 세상에 나온 결과물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노라 시원하게 말을 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글이나, 그림, 음악처럼 예술이라 부르는 직업이 가진 결정적인 공포감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일.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 인정받기 전까지는 모든 작품이, 예술가가 무명이며 인디라는 것. 무명작가, 인디, 듣보잡 뭐 그런 단어와 더 가까운 방구석 작가인 나는 연말을 기점으로 모든 작업들을 정리하고 강원도 산골에 쳐박혀서 글만 쓰기로 결심했다.



3. 역시


하지만 그런 나의 결심이 호락호락하게 '옳다구나, 넌 글만 쓰렴. 넌 작가로서 대성할 인물이니!'라고 수월하게 진행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석원 작가의 최근작 '2인조'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투잡을 해도 모자란 시대에 한 길만 걷겠다며 여러 갈래의 밥줄을 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또 한 달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의 유혹에 못 이겨, '실장님, 2주만 하면 되는 작업인데 이것 같이 하실래요?'라는 유혹에 넘어가 인제로 이사를 온 2주 동안 글 작업은 하지 못한 채 디자인만 했다. 어쨌든 이걸로 인해 1달을 먹고 살 돈을 벌었으니 한 달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거다. 



4. 희망


소설을 볼 때는 책 한 권에 작가가 허구로 만들어낸 세계관, 인물이 살아 움직여 사건을 만들어내는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더니만, 근래에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 장편소설을 보기가 힘이 들어 에세이를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웬걸 또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누군가의 가치관을 읽는 일.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내가 공감하는 일.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여 내가 마냥 어질러 놓은 생각들을 작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문장들을 보는 일은 또 왜 이리 짜릿한지. 에세이가 쓰고 싶어 엉덩이가 근질거리는 거라. 그래서 뭐라도 써야지 싶은데 매일 쓰던 일기를 안 쓰다가 쓰려니 일기를 마지막으로 썼던 3월 29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면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일기를 다시 이어가야 할지. 뭐 이런 것들이 또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쓸 것인지.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머릿속에 파편처럼 뿌려진 생각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 그리고 또 그 정리된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공감이 되고 마음이 울릴 수 있게 쓸 수 있을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단 말인데,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백날 백장 백번을 써봐야 소용이 없고 결국은 쓰는 것이 시작 일터.



5. 결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에세이가 쓰고 싶은데, 하고 싶은 말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고 앉아서 고민만 하는 건 방구석 무명작가의 소임이 아니므로.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개발 세발일지언정 자신감 있게 계속 써 내려가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역시나 언제나처럼 뭐라도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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