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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24. 2021

웨딩드레스가 입기 싫은 예신님

비혼 엔딩_2

웨딩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을 하느니 평생 혼자 늙어 죽을래요


결혼식을 해야만 하는 이유


결혼식은 왜 하고 싶지 않냐라는 질문에 나는 꼭 이런 대답을 했다.

"웨딩드레스가 입기 싫어요."


 상상해봤다. 비즈가 꼼꼼히 박혀 은은하게 빛나는 벨라인의 드레스를 입고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웃으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 하객들이 내 옆에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을. 어색한 화장과 어색한 옷,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찍은 사진을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그 모든 행위를 상상만 해도 나는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결혼식에 로망이 없는 것에 한 술 더해 결혼식 자체를 싫어하고 있었다.


 친구 결혼식도 잘 안 가는 편이었다. 웬만큼 친해서는 청첩장을 받아도 참석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볼 사이라면 축의금 정도는 보내지만 축의금을 안 보낼 때도 많았다. 그리고 관계가 끊어지면 끊어지는 대로,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나와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면 또 그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 참 사회성이 없고 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좋아하는 이들의 기념일이나 축하할 일들을 꼼꼼히 잘 챙기고, 누구보다 축하 인사를 자주 하고 사회성이 넘치다 못해 오지라퍼 성향이 강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그런데 결혼식은 이상하게 그렇다. 뭐에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스쿠루지처럼 굴고 싶다. 내가 결혼식을 안 가면, 축의금을 보내지 않으면 친구가 아닌 것이 되는 이 문화가 경멸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이런 이유 때문에 결혼식을 뛰어넘고 싶기도 했다. 누구는 5만 원, 누구는 10만 원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결혼식을 하지 않는 대신에 최측근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를 따로 만들기로 했지만 코로나 영향 덕분에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축하를 해주는 기회마저 앗아가 서운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도연이 다운' 결혼을 했다 하며 축하해줬다. 축의금도 선물도 줄 사람은 줬다. 더하기 빼기 같은 숫자 말고 마음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로 모두 축하해주었고 감사히 잘 받았다.


* 결혼식, 축의금 문제에 감정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저의 생각 때문이니. 그렇다고 일반적인 결혼식을 하는 이들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문화가 싫고, 나는 그 문화를 따르지 않겠노라 다짐한 것. 그뿐입니다.


모두의 우려와 달리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 엄마는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나의 선택에 반기를 들지 않고 (약간의 잔소리를 곁들이긴 하지만) 시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으므로 우리는 수월하게 결혼식을 뛰어넘고 "결혼"을 먼저 하는 것에 양가 모두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수 있었다.

(엄마+시엄마 고마워요!)


 결혼하자고 얘기가 나온 마당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난 결혼식은 안 해. 절대로 안 할 거야."


 내편은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결혼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우리는 결혼식 대신에 혼인신고를 하는 일을 둘만의 언약식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로 했다. 혼인신고는 강원도 남면의 행정복지센터에서 했다.  계약을 하지도 않은 상태였으나, 그냥 그렇게 했다. 혼인 신고를 마친 후엔 결혼을 기념하며 둘이 한우집에 가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리곤 각자의 집으로 가서 잤다.


별 것 아닌 일상처럼 보내버렸지만 마음만은 너무나도 특별했다. 그날 밤은 잘자 여보. 라고 메세지를 보냈으니까.

이 모든 게 나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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