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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25. 2021

여름 방학처럼 일 년만 살아봐

스무 번째 이사

 이 모든 건 다 '여름방학'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여름, tvN에서 '여름방학'이란 프로를 방영했었다. 정유미, 최우식 두 배우가 여름 한 달간, 시골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서 방학을 나는 것만 같은 콘셉트의 프로였다. 삼시 세 끼에서 보다 조금 젊은 감각이 더해진 시골집이 있는 곳은 강원도 고성이라고 했다. 여름 방학 동안 '건강한 음식을 해 먹기'나,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하기', '일기 쓰기'같은 계획을 세우고 한 달간 건강과 여유를 찾으려는 배우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아침에는 그늘 밑으로 테이블을 옮겨 과일주스와 직접 만든 샐러드 같은 것들로 아침을 먹었고, 저녁이 되면 제철음식과 막걸리 같은 술을 곁들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생활이 부러웠다. 내가 원하는 삶이 딱 저건대.


 도시로 돌아온 후 지난 몇 년간 사업을 시작했고, 카페도 오픈했고, 글 쓰는 일로 돈까지 벌게 되며 미치도록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귀촌은 지워진 지 오래됐다. 너무 이른 나이에, 그것도 혼자서, 게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지속 가능한 일을 찾지 못한 채, 도망치듯 내려가 머물다 온 통영에서의 시간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기에 도시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아니라, 내편이 그런다. 여름방학이란 프로그램처럼,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그 순간, 겨울잠을 자듯 잠자코 있던 내 안의 방랑벽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응? 나 불렀어?'


 또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둘 다 직업이 프리랜서라 가능하니까 하는 거지!'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프리랜서가 된 것이다. 프리랜서로 5년을 가까이 일했지만 불안한 신세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이렇듯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훌훌 가버릴 수 있다는 강렬함 때문에 매번, 제일 먼저 돈을 포기한다. 지난 몇 년 간 그렇게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본 건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을 찾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찾은 일이 글 쓰는 일이다. 여전히 글 쓰는 일로는 넉넉히 돈을 벌진 못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확실한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다행히 아직도 디자인 일로 밥벌이 정도는 가능하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일감이 많이 줄어든 것도 서울을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현) 나의 남편이 된 구) 남자 친구는 고질병이었던 양쪽 무릎 수술을 계기로 일을 잠시 쉬기로 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도, 제대로 된 휴가를 가본 적도 없다는 그의 말에 '내가 먹여 살려줄 테니 일 년 동안 시골생활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라'고 당차게 말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쉬엄쉬엄 살자'라고 했단다. 그때 이 여자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일을 10년 동안 쉬지 않았다는 것. 한 번도 직장을 옮기거나 일을 바꿔본 적도, 그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다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에게 동경의 대상이고, 또 그런 사람은 한두해 정도 푹 쉬는 것쯤이야. 그 정도쯤이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내편은 여전히 불안해했다. 매달 들어오던 수백만 원이라는 돈이 통장에 찍히지 않는 것을. 통장 잔고의 앞 자릿수가 바뀌는 것을. 한 달만 쉬고 다시 일할까? 하면서 불안해하던 내편에게 나는 말해주었다.

"한 달 두 달 쉴 생각 말고, 이왕 쉬려면 최소 일 년은 쉬어봐. 한 달 가지고 미래에 대한 계획 생각? 그딴 거 할 수 있을까? 장담하건대 아니. 일 년을 쉬면서 고민해도 될까 말까야. 막상 쉬면 게을러져. 그러면 늘어지고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거 잠시 잊어버리게 되지. 그렇게 계속 게으르게 사는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러다 보면 죄책감마저 무뎌져. 그러다 보면 문득,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거고,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할 거야."

라고, 장담한다고. 그러니까 딱 일 년만 쉬어보라고.


 그리고 그가 다리를 회복하며 쉬는 일 년 혹은 이년 동안 나는 그리도 하고 싶었던 고립 되어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출퇴근에 외주업무까지 하며 시간이 없어 틈틈이 쓰던 글을, 마음껏 써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럼 돈은 누가 버냐고?


 사람이 사는 데는 역시 돈이 든다. 보험료도 내야 하고 인터넷, 전기료, 대출이자도... 하지만 혼자 살 때보다 적게 든다. 서울에 살 때보다도 적게 든다. 주말이면 택시비, 술값, 친구들 만나 쓰던 커피값, 밥값, 배달의 민족이 없어졌다.(여긴 배달이 안 온다)  운동을 등록하고, 매달 뷰티숍에 가서 속눈썹을 붙이고, 올리브영 가서 화장품에 크림을 잔뜩 사서 들어오던 소비도 없어졌다.(올리브영이 없으니까...) 전셋집에 살게 되면서 월세도 내지 않게 되었다. 농어촌 혜택을 받아 두 살림이 합쳤지만 오히려 건강보험료도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어들었으니 수입이 줄어도 그만이다.


 나름 현실적인 계산도 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미팅을 다닐 수 있는 서울에서 2시간 이상 벗어나지 않을 것. 그래서 결정한 곳이 인제다. 동해바다와 서울의 딱 중간.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강원도 인제에 첫 번째 신혼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미래는 모르겠고 그냥 지금은 당분간 이렇게 살기로 했다. 각자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걸 또 서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면서.


그렇게 둘이 서울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외떨어져, 치열한 세상 속에서 잠시 멀어져 여름방학처럼 1년만 살아보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가 결혼 후 신혼집은 강원도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울 엄마는 '참 똑같은 것들끼리 만났다고' 놀라지도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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