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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an 27. 2021

내 결혼은 부모가 아닌 내가 결정해

비혼엔딩_4

스무살이 된 이후로 나는 내 인생의 결정을 부모에게 맡겨 본 적이 없다. 물론 조언을 구할때는 많지만. 대체로 모든 결정은 내가 하고, 그 책임 또한 완벽히 내가 진다.


삼십 칠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의 이슈 중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사건은 부모의 반대로 남자에게 차였던 일이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이후로 2년동안 연애를 못했으니, 아니, 안 했으니. 정작 나를 차버린 당사자는 부모가 오케이 하는 다른 여자와 금새 결혼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를 못 잊어서냐고? 아니,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내 이상형 목록에 추가된 항목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일 것."

독립한 어른이란, 집이 아닌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한 성인을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 연애는 운명의 장난처럼 시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카페를 할때 지금의 시어머니가 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며느리를 삼고 싶어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진짜 며느리가 되어버렸다. 드라마 같은 전개에 역시 인생은 드라마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우리가 결혼한다고 나설 때까지 사귀는 줄도 몰랐다. 독립적인 불효자 합격!(?)) 우리의 결혼에는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 "우리 결혼해도 되요?"가 아닌, "우리 결혼해요!"였으니까. 덕분에 우리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가족들은 결혼식을 안하던지 말던지, 강원도를 가던지 말던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라고 안달이었다. 알고 보니 서로는 서로의 집에서 결혼 같은거, 절대로 안한다고 큰소리 치던 골칫덩이들이었다. 왠일로 결혼하겠다 나서니 옳다구나! 이때다 싶어 얼른 해치우려 했던 것.


모두가 저마다 가정사와 가족의 분위기가 다르듯, 결혼과 동시에 우린 서로의 가족과 가정사를 이해해야만 했고,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남들 다 한다는 혼수며 예단 예물 모두 생략했고, 그저 우리 둘 잘 살기만을 바래주고 축하해준 부모에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고 감사하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었으면 했기에 우린 참 이상적인 결혼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가정이 생기고, 울타리가 생겼으니 이제 정말 독립을 한 셈이다. 시어머니는 날 참 예뻐하시지만, 결혼 후에 남편의 가족들과 식사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애써 시간을 내라고 하지 않는다. 내편에게도 나의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하라 권하지 않는다. 우리 둘은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평소에 하던대로 하기로.

가족은 가끔 만나야 좋다.(내 기준) 일년에 두어번 명절에 만나 여행이나 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그러면서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깝게, 서로에게 미운존재가 되지않고 웃으면서 살았으면 한다.


우리 둘 행복하게 잘 사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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