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이사
브런치 북 대상을 받은 '망원과 합정 사이'를 읽으며 망원동에 대한 글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생각한다. 정릉도 있고, 신사동도 있고, 사당동도 있는데 왜 망원동인지, 나는 안다. 그러니 이럴 게 아니라 마포구 예찬론자였던 나도 대세에 숟가락을 한 번 얹어봐야겠다.
마포구와 인연을 맺은 건, 스물다섯 살부터다. 그러니까 12년 전, 직장의 사무실이 합정동이었는데 그때부터 '홍대'사랑을 시작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군포, 사당, 구로구에도 살았지만 끝까지 정 붙이고 내 동네라 생각하며 살았던 곳은 마포구다. 마포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 망원동, 합정동, 성산동 모두를 통틀어 '홍대'라고 부르지만 마포구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은 다 통틀어 홍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심지어 공덕이나 마포도 마포구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니까 같은 마포구지만 동네마다 특색이 있고 매력이 달라서 마포구 주민이었던(이제 과거형이라니!ㅠㅠ) 입장으로써는 모두 다 '홍대'라고 칭하기엔 서운한 마음이다. 평소 운동을 의무감으로 하는 편인데 망원동에 살면서 걷기 운동에 취미를 붙였다. 일이 없어 집에만 있을 때에도 만보를 찍으러 무조건 한강으로 향할 정도였으니까. 망원 나들목에서 시작해 서강대교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면 만보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10000이라는 숫자를 볼 때의 희열이란!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몰 사냥에 취미를 들이게 되었다. 노을을 보며 걸으려면 해가 지는 시간에 돌아오는 타이밍으로 걸어야 한다. (망원지구에서 서강대교로 향하는 방향을 노을을 등지고 걷는 방향) 망원 나들목에서도 지는 노을이 예쁘지만, 조금 더 걸어서 성산대교 북단 바로 아래에 있는 세븐일레븐은 연극에서 배우들의 땀이나 눈물이 잘 보이는 1열 관객석 느낌으로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혹은 성산대교를 지나 가양대교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아무튼 망원동에 살 땐 한강공원이 걸어서 10분이라 한강을 걷고, 일몰을 보는 취미를 들였고 그 덕에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걷고, 노을을 보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는 사랑도, 먹고사는 일도 왜 이리 지치고, 고단했는지, 마음이 무척 힘든 때였는데 좋은 날씨와 예쁜 일몰 덕에 빨리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망원동에 애정 하던 공간은 출판사와 카페를 함께 하는 '창비'였다. 창비는 2년 동안 나의 사무실이자 심신을 안정시키는 곳이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몸이 너무 피곤할 때에도 커피를 한잔 들고 수많은 책에 둘러싸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카페의 인테리어가 참 좋았는데 지금은 음악소리도 광광 크게 울리고 조도도 많이 낮아져 예전처럼 일하기 좋고 비 내리는 날 창밖을 멍하니 볼 수는 없는 분위기가 되었더라. 그래서인지 성산동으로 이사를 간 후에는 발길을 끊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가장 추억이 많은 동네는 성산동이다. 월세가 비싼 연남동이 포화상태가 되고, 대기업 상권에 먹힌 홍대역 메인 거리마저도 점점 뒤로 밀리면서 상권이 성산동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산동에도 개인 카페나 동네 서점, 소품샵 같은 아기자기하고 여전히 동네 골목 감성이 살아있는 곳들이 하나 둘 생겨, 예전 연남동과 망원동을 향수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2013년, 내가 성산동에 이사를 올 때만 해도 분위기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앞에 있던 성미산은 십 년 전 연쇄 살인범이 숨어있었던 산이라고도 하고, 시신이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기사를 찾아봐도 정확한 사실이 없어 진실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스산하기는 했던 동네였다. 유난히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화장품 샵이 많았음) 늦은 시간 귀가할 때면, 날 선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택시에 내려 빌라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건물 복도에 행여 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가슴을 졸였다. 걱정하는 만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디서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만큼 늘 외롭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는 탓에 그때의 2년은 마냥 행복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혼자서도 동네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보려 많이 노력했는데, 그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건 도서관이었다. 마포구청 건물 옥상에 있는 하늘 도서관은 경치가 끝내줘서 지금 같은 가을에 가면 하늘도 아름답고, 도서관 아래로 보이는 은행나무 길이 예술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성산동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새로 개관한 중앙도서관을 이용했다. 하늘도서관만큼 경치가 끝내주진 않지만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아 모든 시설이 쾌적하다. 열람실도 넓어 세상에 없는 책 빼곤 다 있을 것만 같고, 공부하는 분들을 위한 시설들도 가히 완벽하다 할 수 있다. 20년 11월부터 첫 장편소설을 시작했는데 1차로 마무리되는 1월까지는 매일 중앙도서관에 출근 해 소설을 완성했다. 지금 강원도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민철이와 함께 살았던 성산동 주택은 오래된 2층 건물의 주택인데 1층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가 있어 우리는 그 집을 성산동 감나무집이라 부른다. 감나무집에 살면서는 카페도 갈 필요가 없었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았다. 테라스가 있고 해가 잘 드는 집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고, 집에 커피 용품을 들여놓고 날이 좋은 날이면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했다. 집이 나에겐 최고의 카페고, 식당이었다.
마포구에 살면서는 골목골목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다녔다. 날이 좋은 날엔 좋은 데로 하늘을 보며 살았고,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엔 또 비가 오는 데로 창가가 시원하게 트인 카페로 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준 꼭지와 산책도 많이 했고 이사를 다녔던 동교동, 망원동, 합정동, 성산동 골목골목마다 눈물도 참 많이 배어있다. SNS에 프로필은 '마포구 종합예술인'이라 써두며 마포구를 사랑했다. 나는 절대로 마포구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친구들한테 맹세까지 했었는데... 어쩌면 많은 책에서 마포구의 매력을, 동네의 감성을 얘기했지만 내게는 마포구가 좋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친구들이었다. 드라마 응팔의 주인공들처럼 동네에서 언제든 전화해 불러낼 친구들이 있었다. 방문만 열면 있던 동거인 민철이는 내 생일이면 미역국에 갈비를 만들어주고,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날엔 칼칼한 김치찌개를 끓여놓는 센스 만점의 동거인이었다. 서로가 힘든 날엔 어깨를 토닥여주는 백 점짜리 동거인. 그리고 감나무집에서 10분 거리에 살았던 연출님. 엄마 집에 다녀오면 꼭 우리 집 반찬까지 챙겨 오는 섬세한 사람. 나를 많이 챙겨주시던 오합지졸 성산동 상인분들까지. 지금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멀리로 이사 가버린 사람도 있으니 영원할 순 없겠지만. 나는 그것을 좋은, 즐거운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
강원도 산골집으로 이사를 온 지 1년.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마포구 작은 골목들이 눈에 선하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던 은행나무길도 생각이 난다. 노을을 보러 수없이 들렀던 한강 길도 그립고, 마포 08번 마을버스를 타고 상암 메가박스에 들러 혼자 영화를 보고 나오던 길도 생생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 고향은 어디야?라고 물으면 대구가 고향이라고 답해왔지만. 마음의 고향은 통영이라고 마음에 새겨버렸지만, 마포구는 나에겐 '내 동네' 그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포구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