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내 꿈은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나는 '디자인 시바'로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 형태를 만들고 입으로 내뱉어 정형화시키기가 까다롭다. 흔히 말하는 '디자인 회사' 보다 '디자인 프리랜서 그룹'의 색이 강하고 디자이너들은 각자 역량에 맞는 일을 하고, 실무 디자인과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바탕,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서른넷, 다시는 회사를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이미 경력은 차고 넘쳐버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디자인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내가 이대로 나이 들어 40살, 50살이 되어서도 포토샵 일러스트와 씨름하고, 트렌드에 촉수를 곤두세우며 살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실무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정확히 정체성을 표현해줄 만한 문장이나 단어는 찾지 못했으니, 천천히 찾아봐야겠다.
무리한 짓을 많이 할 수록 인생이 풍요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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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부터 내 꿈은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가오카 겐메이는 일본의 리싸이클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D&DEPARTMENT라는 리싸이클 브랜드를 운영하며 한국에 알려졌다. 아직 그를 모르는 디자이너라면,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과 자신의 소신을 브랜드에 담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를 추천한다. 분야와 관계없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사람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그리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이야기가 꽤나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며 반드시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대엔 어떤 도전에 앞서 늘 두렵고 시작을 망설였다. 퇴근 후엔 사업계획서를 쓰기도 하고 운영계획서까지 준비했었지만 친구들은 늘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통장에 100만 원이 찍히면 부자인 네가, 무슨 사업이냐. 회사나 다녀라. 나중에 돈 많은 남자 만나면 시집가서 놀면서 사업해라.' 그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것 같다. 경험도 돈도 뭣도 없이 패기만 가득하던 때였기 때문에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업계획서는 쓰레기통에 던져지곤 했다. 그러길 10년, 서른다섯이 되었다.
지금은 시작을 망설이지 않는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들의 적당한 관심과 우려는 감사히 받고, 충고는 한쪽 귀에 구멍을 뚫어 흘려버린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벌이고, 접고, 망하고, 그리고 또다시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도전하고 매진하며 그것들을 실현시키며 사는 지금이 좋다.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건, 나 자신이 부서지는 것,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자신도, 다 잃어도 좋을 용기가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덜 말어!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이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