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같은 관계

우아한 폐업

by 도연




가 족-같은 관계


J가 다닌 회사는 재택근무가 허용되고 출퇴근도 자유로운 회사였다. 그녀는 경력 6년 차의 시니어급 디자이너*지만 연봉은 터무니없이 적고, 제대로 된 복지마저 없는 회사를 다녔다. 자유로운 출퇴근과 그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어 했던 꿈을 함께 진행해 줄 회사라고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한 건 팀장과의 잦은 트러블 때문이었다. 직설적이고 주관이 분명한 둘은 자주 부딪혔고 결국 퇴사를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원망스럽고 배신감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네요. 나만 빼고.







오랫동안 마음을 다한 것에게서 배신당하는 기분, 그 기분을 나는 잘 안다. 24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젊음을 다 바쳤노라 말하는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상황, 작은 회사에서는 더욱 비일비재한 일이다. 디자인팀의 인력이 과하다는 판단을 경영진에서 했고 2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팀장님은 대표님이 나를 해고하길 원한다고 전했다. 이사님이 안된다며 방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24살 회사의 막내로 입사해 디자인 업무 외에도 기획업무, 현장업무까지 다 했기에 디자인 파트에서 메인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표님은 늘 내 작업 물들을 탐탁지 않아했고 디자인 잘-하는 디자이너를 직원으로 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꿈인 사람인 걸. 회사와 내가 원하는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은 탓이 컸다. 9년 전,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사님과 소주를 마시며 그런 말을 했었다.


- 이사님, 이번 달에 너무 힘드시면 저 월급 안 주셔도 돼요. 힘내세요. 전 늘 대표님, 이사님 응원해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곁에 있어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우리' 회사를 많이 좋아했다. 대표님 이사님을 존경했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자 나를 제일 먼저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회사가 좋아 회사 옆으로 이사하고, 주말에 별일이 없어도 회사에 나가 잔 업무를 하곤 했다. 주인의식 과잉일 정도로. 그런 애사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신감과 원망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얘기를 전달한 팀장은 직원들을 해고할 수 없다며 자신이 자진퇴사를 했다. 정리해고 사건이 잠잠해진 후 나도 자진 퇴사했다. 3개월을 겨우 버티고, 업무를 인수인계한 후에 회사를 나왔다. 그리곤 다짐했다. 회사에 가족이란 없다. 가족? 가-족-같네..... 절대로 앞으로는 절대로 회사에 마음 주지 않겠다. 회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으며 SNS마저 모두 차단해버렸다. 완벽히 단절했다. 나는 그러곤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당장 입을 옷만 가방에 쑤셔 넣고 급하게 통영으로 내려갔다. 노트북에 있던 모든 자료와 포트폴리오를 지우고 절대로 다시는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발적 유배를 떠나 통영에서 2년을 보냈다.

하지만 2019년 지금의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고 있다. 또 누군가에겐 '우린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하는 희망을 품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날도,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날도 많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도, 잘하고 싶었던 일들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도 그때가 첫 경험이었을 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대단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우린 살면서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할 테고 그 과정 속에서 너무 상처 받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아파하지 않고, 그리고 그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더 성숙하게 성장되길 바란다.


퇴사 후 여행으로 마음을 회복하고 돌아온 J는 용기도 되찾고 희망도 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통영으로 내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과 같이, 그녀도 치앙마이 여행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매일 연트럴 파크를 산책하며 행복감에 젖어든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이 우선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잊지 말아야지, 사람을 잃는다는 건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는 걸.



*시니어 디자이너 : 프로젝트 1개를 이끌 수 있는 경력자


작가의 이전글시간으로 증명되기도 한다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