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남아야 한다면

우아한 폐업

by 도연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면


지금까지 이야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은 C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그를 표현하고 싶다 '미련의 아이콘'. 나에게 C는 미련한 남자다. 처음 내가 그를 만난 건 그가 서른, 내가 스물여덟 쯤 되던 해였던 것 같다. 김대리님은 회사에서 어느덧 8년 차 디자인 팀장이 되었다.(글에서는 편의상 대리님이라고 칭하겠다.) 회사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을 끊었지만 대리님과만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냈고, 홍대에 가면 회사를 들러 만나고 가곤 했다. 나는 미련한 그를 참 좋아했다.



내가 이렇게 사업체를 만들게 된 결정적인 원인에는 김대리님의 역할이 컸다. 페스티벌 바닥*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은 김대리님에게는 디자인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는 너무 바쁘고 회사에서 외부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아 우리에게 일을 소개해주곤 했다. 실무를 떠난 우리들에게 오작교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소개비와 작업비를 나누며 종종 같이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이 지속될수록 브랜드에선 잦은 미팅이나 현장 참여를 원했고 대외적으로 나설 수 없는 김대리님은 자연스레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함께 일을 하자며 퇴사하라고 종용했지만,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질 만큼의 수익도 아니었으니 어떤 결정이든 쉽지 않았다. 모두 같은 회사를 다니다 퇴사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회사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그따위 회사, 망해버리라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내가 저주를 내린 회사를 여전히 다니고 있는 김대리님은 그냥 웃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이왕 남은 거라면, 최고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는 걸.

어쩌면 우리는 이것저것 다른 것에 관심도, 욕심도 많아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그는 아직도 페스티벌에 열정이 있다. 직접 무대를 만들고, 디자인을 하면서 꽤나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아마 내가 회사 상사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 일을 계속했을 것 같다. 꽤나 매력적인 직업이니까.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해서 배타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을 것. 또래들에게 늘 그런 시선을 받고 지낸 나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 시선이 얼마나 나에게 상처가 되는지, 그리고 용기를 앗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김대리님을, 그의 직장을, 그의 열정을 존중한다.
누군가는 남아야 한다면 당신이 남아 최고가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는 미국으로 떠나고, 김대리님은 직장을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처음엔 거창하게 우리 넷! 디자인,시바로 승승장구합시다! 의기투합했으나 둘만 남았다. 그래도 뭐, 괜찮다.





*페스티벌 바닥 : 저는 2009년 페스티벌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고 2015년까지 EDM이나 자라섬에서 열리는 인디뮤직 페스티벌 등에 디자이너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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