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中
15살에 부모님이 이혼했다.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 없던 엄마가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하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학을 가고, 친구가 없어 도시락을 혼자 먹은 건 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는 1999년 여름이었다. 교실 단상에 올라가 ‘친구들아 잘 있어라.’ 인사한 후, 엄마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많이 서러웠다. 엄마가 울까 봐 울지는 않았다. 극 중 주인공인 혜윤과 나는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부재로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엄마. 동생을 돌보느라 철이 일찍 들어버린 언니, 쉽게 가족에 속하려 들지 않는 혜윤까지. 엄마와 언니, 우리 셋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며 울었다. 서로 우는 것을 모른 체하면서.
혜윤은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당찬 여자다. 정훈에게는 자신의 자격지심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혜윤은 정훈에게 아빠 같은 우직함을 원했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흔들리는 정훈의 모습에 자꾸 실망했다.
나 역시 연인들에게서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할 아빠 같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서른 넘어서 무슨 부모 타령이야.’ 사람들은 말하지만, 내 안에 아빠의 사랑을 갈망하는 15살 소녀가 살고 있다. 내가 15살 되던 해, “애들은 어떻게 해!”라는 엄마의 외침을 무시한 채 아빠는 뒤돌아 나가버렸다. 그날의 장면이 오래도록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지워지지 않을지 몰랐다. 연애를 시작하면 트라우마를 연인으로서 충족하려 하는 이기심이 자꾸 튀어나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혼자 남지 않으려고 애썼다. 반복되는 연애 패턴을 어떻게든 떨쳐버리려고 해봤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바보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했다. 악순환이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 그리고 떠난 자리에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누군가에게서 아빠를 찾아내는 역할극을 그만두려 한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통해 완전해지려 않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애쓰지 않고, 상처를 억지로 덮으려고도 하지 않으려 한다.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이용 하는 일은 상대와 나를 더 상처받게 할 뿐이란 걸 느낀다. 아빠의 뒷모습을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만 같지만, 그 시절 아빠의 나이를 넘어서며, 그를 조금은 이해해보려 한다. 우리의 부모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약하고 위로받고 싶은 인간일 뿐이란 걸.
나의 아빠.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를 이해하게 되면,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대사 발췌 :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JTBC 2012 / 극본 하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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