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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Dec 06. 2018

일곱번째 첫사랑

책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中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

나를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이유가 없는 것도 이유.”




왜 난 비겁하고 치졸하고, 못돼 처먹은 남자들만 엮이는 거지? 그런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또 바보같이 울고, 상처받는 시간을 보내는 걸까. 사람은 상대적이라던데, 내게 어떤 문제가 있길래 자꾸 나쁜 남자가 엮이는 거냐고 자신을 비하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사랑하려 해봐도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자기 비하도 그때 뿐, 또 다시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나는 또 후회한다.




영악하게도 서른셋의 여자는 이전의 연애를 모방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남자의 키스도 지나간 연애에서 학습된 것일지도 모른다.” 



열매는 지훈과 연애하며 종종 석현이 떠올랐다. 석현을 제외 하고는 그녀의 지난날을 이야기할 수 없다. 상대를 애태우는 방법이나,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필살기 같은 것들을 지난 연애들에서 학습했다. 서른셋의 연애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바보같이 착하고 등신같이 눈치가 없었던 첫 번째 남자 친구에게서 나는 참는 법을 배웠다. 그에겐 내가 화를 자주 내는 못된 여자 친구로 기억될 테지만 이후로 연애에서 화를 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깔끔한 걸 좋아하던 또 다른 남자 친구는 나의 지저분한 습관을 못마땅해 했고, 덕분에 난 정리를 잘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후로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그리고 스치던 많은 남자에게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취향, 그들이 좋아하던 음악, 좋아하는 카페 같은 것들이 나에게로 와 내 것이 되기도 했다. 나의 키스 방법도, 연애 스킬도 그들에게서 학습되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즐겨 듣던 ‘Stevie wonder’나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들이 그의 차에서 종종 흘러나오고, 나로 인해 교보문고에 자신이 좋아하는 코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서른넷의 난 이제,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처음이란 건,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30대의 연애가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처럼 설레고, 처음이 아니기에 편안하다. 번개가 치듯 짜릿하진 않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고, 처음 입을 맞출 때면 여전히 수줍다. 우린 이제 서투른 첫사랑이 아닌, 능숙하되 처음처럼 설레는 사랑을 한다.



모든 순간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처음인 것처럼 설랬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직 우리, 더 사랑하고 더 아파해도, 몇 번쯤 더 상처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듯 또 사랑에 빠져버릴 테니까. 이왕이면 다음 타이밍엔 따뜻한 남자가 등장해줬으면 좋겠다. 불안함보다는 편안함을, 뜨거움 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나는 이제 일곱 번째 첫사랑을 기다린다.





로맨스가 필요해2, tvN 2012 / 극본 정현정


드라마 명대사를 인용하여, 작가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한 에세이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의 브런치 연재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재 발간합니다. 출간 후, 작가가 직접 일부 수정하였으므로 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왜울'의 종이 책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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