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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27. 2018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책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中


“세상에는 두 가지의 부류의 여자가 있다.

헤어질 때 뒤돌아보는 여자와 뒤돌아보지 않는 여자.

나는 뒤를 돌아보는 여자다.”



 열매는 뜨거운 여자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매몰차게 차 버린 석현 앞에서도 끝까지 사랑을 찾겠노라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 ‘잘 가, 안녕.’ 인사하고 몇 걸음 못가 뒤돌아보는 여자, 나도 뒤돌아보는 여자다. 조금 더 보태말하자면 그가 뒤를 돌아보고 있지 않을까 봐 마음 졸이며, 뒤돌아보는 여자.


 스무 살에 첫 연애를 시작하고 벌써 10년을 넘게 사랑하고 이별했다. 서른이 넘으면 모든 이별에 의연해질 줄 알았는데, 이별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스무살부터 시작된 릴레이 연애를 끝내고 누구를 그리워해야 할지 생각했다. 스무 살에 만나 군인일 때 매몰차게 차버린 C, 캠퍼스 커플로 3년을 만나며 사랑의 괴로움을 알게 한 J...? 누구를 떠올리며 술을 마셔야 하는지, 누구와의 이별을 그리워해야 할지 몰랐다. 우린 각자에게 유일한 우주이며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이별 후에 난, 아파할 시간 없이 곧바로 다른 연애를 시작했다. 한 달 만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직전의 연애를 잊어내는 '갈아타기'식 이별 패턴을 반복했다. 사랑한 시간을 기억하고 떠나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이런 내가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 것은 아름다운 연애보다.

아름다운 이별이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이후로 ‘지난 연애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지난 연애를 서서히 마음에서 지워내고, 미움은 버리자. 감사함과 추억을 남기는 시간을 갖자. 다음에 찾아올 나의 사랑을 위해서도 좋은 시간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림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외로움을 다른 사람으로 채우며 지난 사랑을 잊어내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니 남는 건 후회뿐이었다. 사랑이 새로운 사랑으로 잊히는 게 아니라, 아픔을 잠시 가리는 것뿐, 새로운 사랑이 걷히고 나면 아픔은 저 밑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아픔까지 켜켜이 쌓여, 아픔의 무게가 더 불어난 채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빨리 늙어버렸으면 했다.

그래서 내 심장도 같이 늙어, 이 아픔에 무심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이별 후에 열매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졌다. 그녀를 애태우던 사랑이, 영원히 뜨거울 것 같던 사랑이,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리다니. 겨우 이런 것이 사랑일까, 그녀가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이렇게 연약하다니,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쓸쓸해졌다. 열매는 석현과 일곱 번째로 이별했다. 친구들은 축하한다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열매는 그런 말이 싫었다. 어떻게 이별을 웃으며 축하할 수 있는 건지, 언제부터 우리의 이별이 축하할 일이 되었는지 화가 났다. 이별, 좋아서 겪은 게 아니었다. 결국 이별이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위로받아야할 아픈 경험이다. 나는 이별의 애도를 마치고 두 번의 이별을 더 했다. 서른둘에 다시 시작한 연애는 일 년이 채 안 돼 끝이 났고, 다음 연애는 6개월도 못가 끝이 났다. 두 번의 연애는 모두 매몰차게 차였고, 나는 매달렸다. 너의 숨소리마저 듣고 싶지 않을 때, 그땐 정말 이별이구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서른이 넘어 몇 번의 이별을 더 겪었지만, 여전히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을 더 겪어야, 얼마나 더 나이가 들어야 이별에 무뎌질 수 있을까.



“인생에도 신호등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멈춰, 위험해, 안전해, 조심해, 오른쪽으로 가. 왼쪽으로 가. 그대로 쭉 가도 좋아.

그렇게 누군가 미리미리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별은 여전히 아프고 익숙해지지 않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랑을 믿고 가꾸고 애쓰면서 살고 싶다. 평범한 서로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사랑을 주고 싶다. 방향을 잃지 않고 안전한 길로 갈 수 있도록. 나만의 신호등을 만들면서.


얼마간의 비상등이 멈추면 파란불은 반드시 켜질 테니까.





로맨스가 필요해2, tvN 2012 / 정현정 


드라마 명대사를 인용하여, 작가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한 에세이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의 브런치 연재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재 발간합니다. 출간 후, 작가가 직접 일부 수정하였으므로 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왜울'의 종이 책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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