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500만 원 치의 부담감
돈은 많이 벌 수록 생활이 윤택해진다. 프리랜서 4년 차, 회사를 다닐 때보단 불규칙하지만 월에 벌어들여지는 수익이 늘었다. 나는 짬뽕을 고민하지 않고 시켜먹으며 죄책감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반대로 낮아졌다. 몇 달째 꼭지와 제대로 된 산책 한 번을 못했고, 내 방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방의 청결도는 다시 수직 상승했지만, 여전히 삶의 만족도는 추락한다. 나만의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도, 한강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을을 기다리는 일도, 영화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들은 지도 너무너무 오래돼버렸다. 벌어들이는 수입만큼 시간에 쫓기고,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1000만 원짜리의 일을 하면 1000만 원어치의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따라오고 100만 원짜리 일을 하면 딱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난히 남일을 하면서 내 일처럼 마음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다. 일을 일로써 해야 되는데 감정을 자꾸 이입하는 것도 큰 단점이다. 아무래도 사업을 하긴 글러먹은 성격인 것 같다.
부담감이 많은 일을 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 실수가 날까 봐 두렵고, 이 실수를 책임져야 하는 마음도 무겁다. 디자인 업무의 특성상 늘 마감에 쫓기고 언제나 누군가의 판단을 받아야만 했다. 로펌에서 인턴생활을 하는 변호사들의 리얼리티 예능을 보다 한 인턴이 이런 말을 한다. 완벽하고 싶지만 100이 안 채워진 상태에서 끊임없이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고, 그 결과물로 판단을 받아야 하니 자신감은 자꾸 떨어지고 결과는 점점 더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인턴의 이야기가 내내 마음이 맴돌아 친구에게 말했다.
- 나는 요즘 너무 일에 자신이 없어. 저 인턴의 말이 너무 공감돼, 나는 완벽하고 싶은데 완벽하지 못한 상태로 결과를 자꾸 내야 하고 판단받아야 하니까 자존감도 너무 많이 떨어지고 의욕도 없어.
- 100이란 게 있기나 할까? 어쩌면 우린 죽을 때까지 우리 자신에게 만족을 못할지도 몰라. 10년, 20년씩 그 일을 하는 장인들도 여전히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연습을 하거든.
‘내가 만족하는 끝’을 생각하다 보니 여태 나는 너무 타협을 하면서 살아왔나 싶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내면서 자신 없고 부끄러운 마음에 ‘대충 했어요’라는 방어벽을 치고 있진 않았는지. 하지만 멘토 변호사는 중요한 건 특별함이나 완벽함이 아닌 끈기와 책임감이라고 한다. 절대적으로 존경받는 이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끈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어쩌면 이대로 자꾸 부딪히고 판단받고 무너져내리는 일을 끈기 있게 반복하다가 보면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함보다도 저지른 실수를 잘 수습하는 일,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비용이 적더라도 하고 싶은 일, 스트레스받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만을 선택해서 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이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단 조금씩 오래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작업 의뢰를 자주 거절하게 되었지만,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 생활이 윤택하진 못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아주 많이 높아졌다. 요즘 나는 매일 꼭지와 산책을 하고, 잠들기 전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