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마지막 이야기
나는 늘 2등이었다. 2등이거나 3등일 때도 있었지만 내 기분은 늘 2등이었다.
17살부터 그림에 빠져 살았던 때, 학교도 빠지고 곧장 화실로 가 밤을 새워 내내 석고상을 그렸다. 분명 우리 화실에서, 우리 학교에선 1등이었는데 전국 대회에 나가면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취업을 하고 서른이 가까워져 갈 때, 또래보다 연봉도 괜찮고 화려하고 보기 좋은 일을 했지만 현실의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보며 열등감에 시달려 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강사일을 하면서는 학원 내 최고 스타 강사가 되고 싶다 생각했지만, 학원에선 남자 강사들에게만 진급 기회가 돌아갔다.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패배감과 왠지 모를 상실감에 열정을 더 이상 지속 하기는 힘들었다. SNS 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누구는 파워 블로그며 인스타 스타가 되어 그들의 일상이 사람들에게 선망 거리가 되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무관심을 받는 쪽도 아니었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어쩌면 쭉 오랫동안 열등감에 시달려왔다. 2등이란 생각, 무엇을 해도, 열심히 해도, 갈망을 해도, 1등이 되지 못한다는 열패감. 상대적 박탈감이 잠 못 들게 했다. 만년 2등이었던 나는 이젠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한다.' 1등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지 않기로 한 건 꽤 오래된 생각이다. (과거의 나태를 반성하고 죽도록 열심히 해서 1등 하자! 하면 너무 뻔하잖아요.) 최고가 되진 못하겠으니 최선을 다 해서 살기로 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남과 비교해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1등을 못한다는 것이 꼭 실패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결정적으로 내 취향은 비와이보다 2등이었던 넉살이 더 멋있었다.
2019년 7월, 폐업신고를 마쳤다. 일 년 만에 출근이 사라졌다. 카페로 매일 출근할 때는 어떤 날엔 신이 나고 어떤 날엔 출근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처럼 싫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허겁지겁 머리도 덜 말리고 택시를 탔는데 지갑을 두고 온 날이 반복될 때는 정말 이 죽일 놈의 출근,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내가 한 선택을 원망하는 일도 지긋지긋했다. 12시 출근이면 충분한데도 그렇게나 마음이 불안해 매일 술도 마음껏 마시지 못했고, 몸이 아파 출근을 못하는 날엔 카페에 왔다가 헛걸음하고 돌아가는 손님들 생각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날들을 보냈다. 누가 감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출근을 안 한다고 월급을 깎는 것도 아닌데... 한수희 작가도 카페를 운영했었다. 그리고 최근 에세이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에게 공감 지수를 폭파시키는 한마디를 날린다. "예쁜 감옥" 그 공간은 정말이지 예쁜 감옥이었다. 스스로 삶에 보이지 않는 창살을 만들어냈다. 싫었다. 12시 5분에 문을 여는 게, 마음대로 카페를 열고 닫아버리는 게 싫었다. 성실한 사람이고 싶었다. 따뜻한 공간을 외치면서 올 때마다 문이 닫혀있는 차가운 느낌도 썩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강이며, 외부 미팅들도 소화하느라 매장을 지키지 못한 날들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12시 오픈을 지키려고 했다. 이도연은 이도연 사장에게 지각해서 혼나고, 이도연은 이도연 사장에게 바가 지저분하다며 혼나고 그랬다. 이 죽일놈의 자괴감.
이제는 아침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는데도 눈을 뜨면 시간을 확인하고 자꾸 어딘가 한구석이 헛헛하다.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지난날을 자주 떠올린다. 지난해 여름은 어떻게 보냈었는지, 그때 내 마음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어쨌든 출근이 사라진 건 확실히 행복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출근이 없는 자유를 제한 없는 자유라 받아들이지 않고 하루하루의 일정을 만들어 가며 일을 하고 가끔 쉰다. 그래 나 자신 참 수고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번에도 1등은 못했네? 괜찮다. 1등 하려고, 성공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닌 일인데 뭐. 앞으로도 치열하게 열심히 살자. 절대로 무엇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다. 토닥토닥.
지난 1일에 호피폴라 정식으로 인수계약을 마쳤습니다. 호피폴라를 준비하던 시간들과 1년 동안 다녀가주신 고마운 분들의 자취들이 소중히 남아 많이 아쉽지만, 다음 스텝을 위해 카페 운영을 마무리합니다. 일 년 동안 다녀가주신 분들, 호피 폴라 오픈을 위해서 도와주신 분들 한 분 한 분 모두 감사했습니다. 호피 폴라를 운영하는 동안 책도 3권이나 출간했고 잘 된 일이 많습니다. 공간으로 인해 좋은 일들이 많이 성사되었고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더운 여름 잘 나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또 만나요.
그동안 호피폴라에서 따뜻하고 느린 마음 나누어 주신 모든 분들 고개숙여 감사하며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모든 순간들이 찬란하게 빛나길 바라요.
- A slow but fulfilling life_hoppipolla.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