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도 돼, 몽골이니까!
드디어 고비사막 여행을 시작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천지가 흙색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길, 무작정 달려도 넘어지지 않을 이 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된다.
고비사막의 끝없는 길을 달리고 있노라면 사람보다는 동물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독수리 때가 소 한 마리를 뜯어먹고 있다. 끔찍하기도 했지만 그 옆을 지나가는데 너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처음보는 광경이라 신기했지만, 이제 곧 흔해빠질 풍경이다. 차보다 동물이 우선인 풍경, 낙타 무리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는 풍경 같은 것들. 이 곳 몽골 사람들은 자연과, 동물과 융화되어 살아간다. 무작정 해치고 이용하고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주어진 환경 품 안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하루에 이동시간이 최소 6시간에서 8시간쯤 된다. 누구는 이 시간에 대해서 ‘승차감이 좋지 않은 차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힘든 여행’이라 평할 것이고, 또 누구는 ‘차를 오래 타서 음악도 듣고 풍경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좋았던 여행’이라 기억할 것이다. 나는 후자 쪽에 가까웠다. 물론 오프로드를 6시간씩 달리다 보니 일주일쯤 되었을 땐 엉덩이도 쑤시고 허리도 아파왔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이동 시간이 꽤 긴 것을 좋아한다. 국내여행도 차를 타고 가는 쪽보다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고, 환승으로 빠르게 도착하는 것보단 환승이 없더라도 한 번에 오래 쭉 - 가는 것을 선호한다.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비싼 옷을 사고, 고급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더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시간을 돈으로 살 순 없으니까. 시간을 낭비하고 나면 어쩐지 내가 조금 사치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즐겁고 행복하게 여행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차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정말이지 1분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비 사막에선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생각보다 엄~청 불편하다. 이동 중 작은 마을이라도 들를 수 있다면 겨우 신호가 한두 칸 정도 잡히지만 5G 국가에 살고 있는 나로선 그 미세한 신호로 뭘 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장 사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울란바토르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고, 여행 잘하고 있다고 한국으로 메시지도 보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또 문제는 음악인데, 나는 인터넷을 쓸 수 없을 거라 예상하고 미리 다운로드된 음악을 핸드폰에 담아 왔다. 미리 준비해두지 못한 일행들은 일부로 여행 동안 들으려고 플레이리스트까지 준비했지만, 여행 내내 한곡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음악만 주야장천... 일주일 내내 들었더니 아주 지루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다음에 혹여나 또 이런 여행이 생기거든 아주 다양한 음악을 준비하거나 열 번 백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음악을 준비하리.
- 잉케! 우리 화장실 좀 세워줘요!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말하라던 잉케*에게 사인을 보냈다. 운전을 해주시는 기사 아저씨는(기사 아저씨 이름은 너무나 어려워서 쓸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아저씨, 인걸로)
어쩌다 보이는 건물 앞에 푸르공*을 세웠다. 나는 두려웠다. 저 문을 열면 내가 지금까지 자연 다큐멘터리 속을 달리고 있는 상상이 와장창 깨어질 것이 분명했다. 저 허름하고 덜렁거리는 저 문을, 과연 열어야 할까... 100미터 떨어져 서있는 지금 내 앞에도 이렇게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일행 중 Jini가 먼저 문을 열고 볼일을 보고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캠핑도 다니고 산에도 자주 가니까 아무데서나 볼일을 잘 볼 거라고 생각하신다고요? 오산이세요. 오히려 자연으로 갈수록 더 볼일을 보기가 힘들다. 특히나 큰 볼일의 경우, 등산을 하다가 똥을 밟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래서 보통은 화장실을 이용하고 화장실이 없는 곳이라면 큰 볼일은 지사제 같은 약을 먹고 참는 편이다. 잠은 아무데서나 잘 자지만, 더러운 화장실은 아직도 힘들다. 몽골 사막에선 화장실보단. ‘초원에 세워줘요’ 하는 게 더 쾌적하다는 사실을 사막 여행 첫날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몇 시간을 달려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차강 소브라가에 도착했다. 첫 번째 관광지에 도착했더니 여태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관광객들이 꽤나 몰려 있었다. 푸르 공도 몇 대가 더 있었다. 대게는 아시아 사람들이었다. 몽골은 다른 서양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스팟은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하다 채리가 그런 말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남미를 가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서양 사람들에게 몽골 여행은 거리도 멀고,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데다 제대로 된 숙박시설도 없는 오지여행이라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오, 그럴듯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좀 더 많은 사람과 누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아, 아시아의 이 아름다움을 보아라! 차강소브라가는 원래 바닷 속이었는데 지질 활동으로 융기해서 이렇게 우리 눈에 보이게 되었다고, 너무 신기하다 신기해... 몽골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그랜드 캐년을 가본 사람들은 실망한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 뭐야? 이게 다야? 그랜드 캐년은 이거보다 백배는 멋있다고!
일단 그랜드캐년 안 가봐서 난 좋다. 멋있다. 웅장했다. 뭐든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바라봐주길.
우리 오늘 어디서 잘까?
어디든 좋아.
잉케가 물었다.
- 어디서 잘 거예요?
- 어디든 좋아요. 적당한 곳 아무 데나 세워줘요.
잉케와 아저씨는 몇 마디를 나누더니 저 멀리 차강소브라가가 보이는 자리에 푸르공을 세웠다. 오늘 우리들의 공간은 정말 허.허.벌.판이다. 캠핑이 처음인 몇몇 일행도 텐트 설치하는 방법을 보여주니 금세 잘 따라 한다. 뚝딱 오늘의 집 5채를 모두 짓고 다 같이 일몰을 보기로 한다. 바다로 뜨고 지는 해는 종종 보지만 이렇게 땅 위에 떨어지는 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를 본 게 생애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 지평선에 떨어지는 일몰을 본 적이 있어?
여행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첫째 날 기억이 흐려진다고 생각했다. ‘첫째 날은 뭐 별로 한 게 없구나.’ 그랬는데
가만히 지난 시간을 떠올렸더니, 지평선에 떨어지는 일몰도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별도 여행 중 가장 많은 날이었다. '내일 되면 더 많을 거야.' 그런 생각하면서 하늘 한번 제대로 올려다보지 않았던 정신없던 첫째 날, 다음날부터는 보름달이 너무 환했고, 구름이 많아서 별은 보지 못했다. 역시 있을 때 잘해야 해.
텐트 속에 들어가 취기에 이런저런 글을 끄적이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볼 은하수를 기대하면서. 서른이 넘으면서, 순수하게 친구를 사귄다는 건 연애만큼이나 어렵다.
서른셋, 가진 것이 젊은 패기뿐이었을 때, 사귀었던 친구들도 각자의 생활로 바쁘고 처지가 달라지면서부터는 어쩐지 대화도 잘 통하지 않음을 느낀다. 공통 관심사도 없고, 점점 취향은 달라져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추억.
"우리 그땐 그랬잖아 -"
물론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도 색 바랜 테잎을 꺼내보는 것처럼 가끔 꺼내보며 온기가 올라오곤 하지만, 어쩐지 자주 연락 닿기가 힘들어진다. 사회에선 누군가를 만날 때는 직함과 명함이 자꾸 끼어드니, 서른 넘어 친구가 사귀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고비사막 첫째 날, 그런 얘길 나누었다.
- 우리 어떻게 이렇게 하루 만에 빨리 친해졌지?
- 직함 떼고, 명함 버리고 만난 사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 여긴 선배도, 클라이언트도, 직장동료들도 없고, 편하게 즐겨버리자! 몽골이잖아!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기로 서로 마음먹었다.
잉케는 우리의 가이드이다. 앞으로 자주 등장할 인물.
푸르공은 고비사막 투어를 해주는 승합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