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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지는 흉터 그리고 성장

Chaud, Derrière

by 낭만셰프

Chaud, Derrière

'쇼, 데히에흐' 이렇게 프랑스어로 발음하면서 뜻은 '뒤에 뜨겁습니다'라는 의미이다. 특히 프랑스의 주방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나 역시 이 말을 쓰면서 주방에서 일을 했다. 처음에는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익숙해지면 항사 쓰게 되는 표현이기에 꼭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주방에는 특히 칼과 기름 뜨거운 물건들이 많기에 항상 조심해야 했기에 꼭 이렇게 주의를 주는 말을 사용해야 했다. 아니면 정말 크게 다치게 된다. 주방은 이런 곳이다. 정말 위험하기에 항상 긴장하고 또 긴장해야 하는 상태여야 한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다쳤다. 화상 흉터와 상처들 정말 많다. 그럼에도 나는 요리하는 것이 좋아 셰프라는 직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처음 칼을 사면 항상 피를 보게 되어있다'

아마 요리를 하는 모든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그런 말일 것이다. 새 칼을 사게 되면 반드시 그 칼에 살짝이라도 베인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칼과 친해지게 된다. 무슨 장난 같은 말이지만, 다들 겪어오면서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다. 나 역시도 새로운 칼을 사고 나서 몇 주 안에 가볍게 베였다.


이렇듯 요리하는 직업은 항상 피를 보게 되는 그런 직업이다. 그만큼 불과 날카로운 도구 그리고 화상의 위험까지. 주변에는 항상 이렇게 무서운 도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도구들을 다루어야 하는 직업.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만큼의 위험한 직업이지만 손님들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러한 위험을 항상 신경쓰면서 맛있는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파리에서 겪었었다. 15시간의 기나긴 노동. 정말 몸은 힘들고 정신도 같이 힘들어진다. 그리고 뜨거운 오븐과 기름. 항상 신경쓰이고 또 한번 더 주위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이것이 요리사의 삶.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기에 하는 것 같다. 또 그것이 파리 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었다. 특히 미슐랭이라는 명성이 깊은 식당에서 일한다는 그런 명예를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그런 특권은 아니다. 그만큼의 노동을 견디고 최상의 퀄리티를 뽑아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당연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다치는 것은 정말 허다하다. 나 역시 피를 보고 또 화상도 입는다. 지금 나의 손과 팔에는 다양한 흉터와 화상 자국이 가득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에 반팔을 입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상처가 많아서.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상처가 아닌 몸에 새겨진 훈장이라고.

당연 나의 부주의로 인한 상처도 있지만 그러면서 나는 깨닫고 또 성장하는 것 같다.


파리에서 한번 응급실을 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실습생으로 잠시 일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재료 손질을 하던 중 나는 모르고 옆에 있던 친구의 칼을 살짝 건드렸고 떨어지려는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서 사고는 일어났다. 솔직히 그때 어떤 물건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던 본능이 오히려 화가 되어서 돌아왔다. 다들 본능적으로 떨어지는 물건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 물건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런 행동을 했었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바로 친구가 새로 산 칼이었다. 새로 산 칼이어서 그런지 정말 날카로웠다. 그러면서 나의 손가락은 가볍게 베이게 되었다. 정말 처음에는 무슨 느낌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하고 보니 깊은 상처였고 신경전까지 베인 상태였다. 그렇게 급하게 지혈을 하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해외까지 나와서 이게 무슨 일이냐.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것도 프랑스 응급실을 가다니. 정말 처음에는 말도 안 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답답한 마음이었다. 피는 계속 흐르는데 말은 통하지 않고 그때 몸과 손을 쓰면서 최대한 의사소통을 하려고 애를 썼다. 아직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하지만 여기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어를 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곳이다. 그날 바로 시술을 하지는 못하고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그다음 날 오라고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찾아가니 여기가 아닌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큰 병원이었지만 그렇게 손가락을 다루는 의사 선생님이 안 계셔서 다른 병원으로 원정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병원도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여기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한 시스템이었기에 예약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휴대폰으로 예약을 하고 찾아가니 하루만에 수술이 가능하다 하여 급하게 손가락 베인 부분을 수술하는 상황까지 갔었다. 프랑스에서 이런 일까지 겪다니. 차가운 수술방, 가볍게 손가락만 마취를 끝내고 베인 부분을 봉합하는 수술을 20분 동안 진행했다. 금방 끝내는 수술이라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천운이었다. 정말 이때 깨달았던 점이 많았다. 주방 안에서는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손과 팔에 보이는 수많은 흉터를 보면서 느끼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내가 배운 것도 많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굳이 타투까지 할 필요가 없다. 이미 흉터로 타투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프랑스에서 응급실이라...

여기서 프랑스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병원비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다. 국가에서 발행해 주는 초록색 보건증만 있으면 국가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비록 외국인임에도 이것도 국가에서 다 지원해 준다. 또 개인 집으로 매번 간호사들이 방문하여 상처를 소독하고 또 치료해 준다. 정말 좋은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치면 그냥 서럽고 또 혼자 있었기에 더 슬펐던 것 같다. 그냥 어디든 다치면 안 된다.


요리를 하는 직업이 다치기도 하고 또 매번 긴장을 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지만 나는 요리하는 것이 좋다. 그냥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나는 셰프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지금도 계속 좋은 셰프로서 성장하기 위한 여정을 하는 중이다. 나는 그렇게 흉터와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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