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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Apr 02. 2024

 태양왕 루이 14 세 베르사유궁전의 연회와 식탐

“짐이 곧 국가다!”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년)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꿈은 태양왕이었다. 이집트의 태양 경배 사상에서 바탕된 유일신과 같은 절대자를 추구했다. 그는 대규모 궁정 축제를 통해 태양왕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연에서는 스스로 그리스 신화 속의 태양신 아폴로를 분장했다.

국가적 축제에서 각종 기호와 상징을 동원해 자연 질서와 사회질서의 동일시를 홍보했다. 자연계는 태양이 중심이고, 인간계는 왕이 중심이라는 이미지 구축이다. 나아가 루이 14세 자신은 두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자, 신화적 존재로 군림하고 싶어 했다. 그는 우주질서와 정치질서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상징화 작업을 통해 권력을 강화했다.

그 권력의 강화 무대, 즉 거대한 공연장이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이 궁전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떨어져 있다. 베르사유 궁전은 1624년에 루이 13세의 사냥용 별장으로 지어졌다. 루이 13세 사후에 방치된 궁전은 루이 14세가 1661년부터 재건축을 시작했다. 계속된 화려한 건축 후 루이 14세는 1682년에 왕궁을 파리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왕은 고위 귀족들도 강제적으로 이주하게 했다. 귀족세력을 누르고, 절대왕정을 확립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파리를 비롯한 주요 지방에는 터를 잡고 있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있었다. 반면 신도시 베르사유에는 그들의 권력이 자리할 요소가 없었다.

이에 따라 왕의 위엄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졌고, 궁전은 갈수록 화려해졌다. 왕에게 고개 숙인 귀족들의 저택도 즐비하게 들어섰다. 궁전 건물 면적보다 더 넓은 정원의 크기를 자랑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왕실 문화, 고급 귀족문화가 피어났다.

루이 14세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았다. 권력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님을 알았다. 물리력과 함께 감정을 지배하는 힘도 있어야 함을 알았다. 우주의 중심인 태양왕 이미지 구축에는 귀족들이 고개를 숙일 랜드마크 궁전이 필요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곳곳에 아폴로의 상징인 태양이 장식된 천장과 큰 문을 세웠다. 루이 14세 침실에는 모나리자가 미소를 지었고, 궁전의 벽에는 당대의 거장인 라파엘로, 루벤스 등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또 밤에는 궁전 곳곳에서 수많은 양초가 유리 샹들리에와 은제 촛대 위에서 타올랐다. 커다란 연못, 아름다운 폭포와 분수, 극장과 테라스 등 자연과의 조화된 세련미는 지방 귀족들을 심리적으로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루이 14세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대규모 공연을 열고, 장엄한 각종 상징과 의례를 통해 권력을 더 강화했다. 완벽한 감정의 지배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의 진정한 권력센터가 되었다.

1662년의 마상 행렬, 1664년 마법성의 오락, 1668년의 라 샤펠 조약을 기념하는 궁정 축제, 1674년의 프랑슈-콩데 점령 기념 궁정 축제 등에서 그는 태양신과 동격으로 거듭났다. 루이 14세는 이후에는 일상의 삶인 기상, 식사, 산책, 취침 등에서도 위엄 넘친 절대자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궁정 축제는 짧으면 하루, 길면 보름씩 이어졌다. 매주 토요일 저녁은 어김없이 연회가 펼쳐졌고, 요일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밤에 음악과 춤이 있는 도박판이 벌어졌다. 가장무도회도 심심찮게 열렸다.

루이 14세는 힘 있고, 야심 많은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치와 향락에 젖어들게 했다. 그들의 도전정신을 억누르고, 능력을 서서히 약화시켰다. 힘이 빠진 귀족들은 점점 왕의 충직한 신하가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절대자, 절대군주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모든 행사에 음식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공됐다. 루이 14세는 식사도 권력 강화, 신비로운 존재로 각인작업의 밑바탕으로 활용했다. 중세 유럽의 궁궐의 식사 예법은 서열이었다. 지체 높은 왕은 자유로운 자세로 큰 의자에서 식사를 한다. 왕족은 왕보다 작은 식탁을 차지하고, 귀족은 모퉁이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는다. 식사 양도 차이가 있다. 메인인 고기의 양은 왕-왕족-귀족 순으로 차등이 있었다.

만찬 같은 식사 의전도 장엄했다. 의전관이 왕의 식사 시간을 알리면 친위대 장교와 다른 의전관이 식탁 용품을 들고 짧은 행진을 한다. 행렬 때 참석자들은 경의를 표하는 세리머니를 거친다. 다양한 의전을 통해 왕의 권위를 높이고 귀족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 루이 14세는 대식가였다.

식탐이 많은 그는 축제 때 한 번에 꿩 2마리, 수프 4종류, 햄 2조각, 양념 양고기 한 접시, 샐러드 한 접시, 페스트리 한 접시에다 삶은 달걀과 과일까지 먹기도 했다. 그는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식사 때 포크 대신 칼과 손을 사용했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축제는 프랑스 궁정 음식문화를 발전시켰다. 축제는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져 유럽 여러 나라에 알려졌다. 그 결과 프랑스 귀족 음식은 유럽 곳곳의 귀족 식탁에 전파되었다.

식탐이 많은 루이 14세는 76세까지 장수했다. 비록 그는 오래 살았지만 건강하지는 않았다. 중풍에 걸리고 치아질환, 소화기질환으로 고생했다. 식탐은 건강의 적으로 작용한다. 과식과 폭식이 잦으면 위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한다. 이로 인해 소화불량은 물론 각종 성인병인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에 취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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