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아웃소싱이 되나요

사랑니가 아프냐 사랑, 니가 아프냐

by Romantic Eagle

서른이 넘어갈수록 어떤 것을 환상의 영역에 가둬 둘 능력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알게 된 것에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화려한 레스토랑의 주방이 한창 홀이 바쁠 시간에 얼마나 Hell 인지 알게 되면, 그 고급스러운 분위기, 음악, 웃으며 서빙하는 웨이터, 그리고 아름다운 그릇에 올려진 음식이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알게 되면 그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예쁘게 겉치레를 하고 나온 음식에 포크와 나이프를 어색하게 들이대며 음식을 음미하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다.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그 프레임의 욕구가 더 강하면, 주방의 Hell 은 곧 예술을 창조하는 하나의 장이 되는 것이다. 주방에서 지옥을 경험하며 바쁨을 이겨내는 쪽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며 음식을 먹는 쪽이든, 늘 한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누굴 위해 어떤 특정한 시간을 살았다면, 나 또한 그를 누릴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 그리하여 환상은 계속 환상의 영역에 가둬 둬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세상을 1차원으로 볼 수 있었을 때가 그립다. 모든 꿈 꿀 수 있는 것이 환상적이었고, 모든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악마였으니까. 그러나 1차원의 세상은 나를 제대로 속이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내가 궁금한 것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막연하고 진부한 단어들로 나의 상상력을 언짢게 만들었다. 그래서 알 것 같게 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어느 만남 하나 이기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같은 상황의 동지는 그 상황이 유지될 때나 동지, 혹은 친구이지 그 상황이 깨져버리면 반드시 일단은 멀어졌다. 아마도 나는 더 나은 인간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정의하는 것이 곧 내가 결핍되어 있는 것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들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일 뿐이었다. 내가 어떤 문법과 기억 속의 문장들을 애써 불러와서 내가 아는 언어로 말해버리거나 써버리기 까지 그것들은 그저 감정 이입되지 않은 멀쩡한 개체 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정의하고자 하는 것의 의도는 현재 내가 인지하겠다는 상황이 내 편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섭섭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고착된 머릿속의 지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제대로 게을러지겠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쓰겠다는 것이 곧, 더 이상 환상할 수 없는 세상을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사랑의 프레임이 100번을 깨졌어도 101번째 설렘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인생도 사랑도 연속된 프레임이 아니라 독립변인 인지도 모른다. 매 순간이 새로운 개입을 선언하지만 한 개인의 머릿속이 어제의 기준을 데려오고 어제 쓰던 말을 해 버릇하는 바람에 진부 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단정하지 않은 문법 사용으로 나는 나의 확신을 유연하게 숨기려 하는지도 모른다. 숨기기는커녕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겁한 인상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글을 썼든 독자의 프레임에 다시 빗대어 받아들여질 것이기에 어떠한 걱정도 또다시 나라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사랑은 로맨스 영화가 하면 되고, 결혼은 이미 나의 부모님이 해 보셨다. 내 제목에 답을 하자면 사랑은 아웃 소싱할 수 있다. 결혼도 이미 해 본 사람들의 현재를 보면 충분히 나의 미래를 볼 수 있다. 하나 혹은 두 세대의 차이는 결코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만인의 주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혹은 나만 이 사랑의 정의에 집착하는 것일까. 결국 내가 현재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질문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내가 내리는 멋쩍은 결론은 이 시대 생명체의 개수만큼의 정의를 갖고 있는 그 잘난 사랑이 모든 것을 예술 또는 지옥으로 구분 짓는 기준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예술도 지옥도 정의되기 전까지는 그저 있는 개체일 뿐이기에 나는 다시 나의 정의를 거둔다.


한 사람을 사랑했고, 1년을 그리워했고, 이제야 그 사랑은 내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 끝났다는 것을 이해한다. 내 친구는 내가 돌아오고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돌아온 날 우리 사이는 끝났다고. 나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확실히 안다. 1년을 그리워하는 동안 심장은 고장 나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나는 비로소 거의 무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혼자 카페 구석에 앉아 글로 어떻게든 상황을 덜 아프게 만들겠다는 집념이야 말로 나를 오늘도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사랑니가 두 개나 더 나오려고 한다. 온 잇몸이 지진을 일으키지만, 내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장 난 심장도 내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로 떨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손 쓸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겠지.


아직도 사랑니도 아프고 사랑, 니도 아픈 서른 줄의 여자 사람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내일의 사랑을 다시 환상하겠지.

한 번도 사랑을 안 적 없던 것처럼.



sticker sticker

"Goodbye to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