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ter"they"

by Romantic Eagle


어제 까지 알던 사람은

어제까지만 알던 사람이다.


사람은 매일매일 미세하게 변화를 거듭한다.

그러나


어제의 기억은


언제나 나와 "선택된 타인"인 너를

같은 방식으로 "서로"하게 한다.


변함없는 틀이

서로의 사이를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교집합과 차집합을

밀물과 썰물같이 반복해도

지겨운 줄 모르고

"서로를 반복"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현재로 인지하는 “시간”이

최대 3초라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슈테판 클라인.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화가 나고, 삐지고, 짜증이 나고, 환장할 것 같아도

항상 그럴듯한 계기를 계기로


당신은 나에게

그래도 보고 싶게 된 사람이

되어 있고,

그래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고,

그래도 언제나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고,

그래도 돌아서면 없는 것보다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쩌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곁에 누구를 둔다는 것은

커다란 짐이지만

커다란 결심이고,

그 상대가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 같은.




그리하여 어제 알던 너를 밤새 잊었다가도

오늘 “만나야 하는 특별한,

그러나 익숙해진 이유”에 의해

다시 만나

어제 했던 기억의 연결 고리를 빌려

당신을 정의한다.

바로 그 행위는 어느덧 나를 정의하는

제1의 기준이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사건”들을

끊임없이 “알리면서”

자신의 대부분을 존재시키시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제 만났던 당신은 반드시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내 시야에 들어옴으로써

나는 내가 된다."



그렇게 누군가를 내 인생에

letting in하지만,

안정적인 관계가

무의식적으로 강요되는 바람에

그 상대는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감흥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럼 그를 인지하는 주체는

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점진적으로" 진부 해지는 그 관계의

repertoir에서 그 상대를 사랑은 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Dilemma에 빠진다.


어쩌면

자기 안정을 위해 타인을 "어떠해야 함"에

가두는 행위로

다른 시선으로 그를 볼

"시선적" 여유를 "일시적으로"

가질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어떠해야 하는" 사람이 변한다.


인간은 정체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거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거나

다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나가며

내가 수년 전 도장 찍었던 모습은

낯선 사람이 되어 있다.




"인간관계"가 tricky 한 이유는

혼자 있을 수 없기에

"사회 관계"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한 얽힘"보다는

"병적인 얽힘"에 더 쉽게

노출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는 다 "각자"의 "안녕"을 위한

상대를 갈구하고,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던 모든 "변수"들은

각자 개인이

개인의 세계와 그 개인을 둘러싼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기 위한 "개인 진화"를 거듭하면서

본색이 드러난다.



가까운 시점에서 봤을 때는

어제와 오늘

"나의 타인"은 그대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듭하는 "어제"와 "오늘"의 타인은

결국에는 서로 다른 페르소나를 품고 있는

잠재적 Stranger 인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 남이 될 수 있는 여건도,

이유도 없지만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현을 하든,

하지 않든)


극단적인 가정으로 들리겠지만,

각자의 길은

결국

Death day를 기점으로 갈린다.


그 사이

완전한 타인인 "우리"가 만났고,

서로 변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살았고,

변해야 했다면 변해야 했을 "기로"에 놓였다.


어떤 이별은 인정하지만,

어떤 이별은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정할 수 없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그러나 사랑했던 타인이기에

서로의 추억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희미한 웃음을 허락한다.


누구와는

마주하는 시선보다

피하는 시선이 더 많겠지만,

힘든 시간에는 서로의 눈물도 나눌 수 있고,

기쁜 일이 생기면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이 다를지라도

서로가 그렸던 사랑인

이 세상 단 하나의 사랑을

"일어나게 했기에"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사랑"을

남기고 가기도 하고


혹은 "몇 개의 이별"을 남기고 간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결국에는

만남을 전제로 일어나는

우주의 magic 인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살면서

그 개념의 고귀함까지 실천하고 살기는

현실적으로 버거운 바람에

탈색되기도 하는 정의들이지만,


"나"와 "너"였기에

더 특별했고,

더 평범했고,

더 슬플 수 있었던



Yester"they"는

To"they"를 거쳐

TO mor ROW,

내일로 노를 저어 간다.



그 여정에는 늘 나를 비롯한

"진화하는" 타인들로

가득할 것이고,

우리들의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선조들의 여정이 그래왔던 것처럼.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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