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좋아하게 내버려 둬 줘서 고마워.
사랑한다는 말이든,
고맙다는 말이든,
미안하다는 말이든,
뭐, 이렇고 저런 말이든,
말이 나올 만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기쁨에 찬 말이든, 슬픔에 찬 말이든
들어주는 사람의 입장과
무관하게 난무한다.
뭔가를 좋아하려면
그것에 대한 감당할 만한 정보가
충분해야 했다.
뭐든 이 쪽에서 감당 가능한 선상에서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방식으로
"좋아하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은
그 역사를 시작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사랑한다"라는 가장 이기적인
문장을 제일 성가시게 여겼던 사람들 중
하나로서,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려고 하니, 꽤 거부감이 드는 방식으로
그 말이나 할 줄 알아야
내가 그래도 얼마나 그를 아끼는지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그른 것 같길래
"사랑한다"라는 말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I love you.
그냥 안녕하세요.처럼 접근하기 쉬워져서
내뱉은 건지, 마음에 넘치는 그 모호함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던진 건지,
구분할 수 없었던 선이 생겼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 순간.
말에 책임을 지기엔 서류가 버겁고,
헤어지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기에는
그래도 살아야 하는 날들이
버거운 바로 이 시점에서,
결혼해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결혼을 선택하기에는
이미 전례 있는 케이스들이
결혼의 득과 실을
적나라하게 영상화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사람 없이는
이미 죽을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의 유연함과 완전히 무관하게
사회는 서류에 적합한
은행 잔고, 직업의 유무,
보험증서 등의 증명서를 요구한다.
2 주 정도 뒤에는
생이별해야 하는 사람과도
7월의 어느 수요일을
아주 일반적으로 보내야 하는
이 시각을 지탱하는 시공간이
거짓말 같아서
갑자기 역겨움이 몰려온다.
다섯 걸음만 걸으면
다가가서 안을 수 있는 사람을
두고도
지금 이 시각 일을 하고 있는 저 사람에게
그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일
이상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웃기고,
좋아한다는 말이 진부해서
아무 말도 안 하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가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살아야 했던
나는 기어코 또 하나의 이별을 앞두고
청혼을 할까... 하다가도
« 결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기껏해야
내 멋대로 좋아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로
아름다운 작별을 연극화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정말
비자 하나 때문에
멈춰도 되는 우리인지
묻고 싶은데,,,
내가 알지 못하고
입으로 옮긴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이 된 그는 목이 부어서
말을 하지 못한다.
Love disease.
사랑이 결론적으로는 병인 것인지,
사랑으로 결실을 맺은 병인 것인지
경계를 알아내려 하기에는
이미 타인이어야 하는 당신을
내 곁에 둬도 되는 거냐고 묻고 싶은데,
저 사람이 너무 아파서
나를 보는 눈에 초점이 없다.
내가 책임지고 싶은데,
책임을 지는 쪽이 되고 싶은
저 남자는
나만큼은 필요로 할 수 없음에
괴로워 보인다.
Thanks for letting me like you.
and sorry that you have to go through
everything
that you were not supposed
to have gone through
only because I had kissed you.
I love you but don't listen to me.
and get well soon so I'd be sick.
for leaving you.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