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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ul 29. 2020

We're only 1.7 day away,

remember?

제목에 장면을 넣고 싶지만,

내 시선에 어떠한 색깔도 들어오지 

않기에, 사진을 넣어도 내 슬픔을 멈추지 않았고,

사진을 넣지 않아도 내 슬픔은 멈추지 않았다. 



립스틱을 바르고 싶지 않지만,

발라서 내 감정을 숨기나,

바르지 않아서 내 감정을 드러내나

타인은 나를 읽을 겨를이 없을 뿐이다. 


"아..사랑하는 사람이랑 헤어지고 와서,

너무 슬프다...."

"그러게.. 왜 왔노..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오네..

저녁 뭐 먹을래? 면 먹고 싶은데,,니는?"


내가 어렵게 뱉어 본 말이

직접적 타인에 의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가

애써 그래도 친구의 말에 반응은 해야하기에

뭐라도 지껄인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릴 때에는

밖에서 맞고 들어와서

엄마 품에 안기면 슬픔이

상쇄되는 듯 했다. 

친구한테 몇 마디 털어놓으면

대충 잠은 잘 왔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온 것 같은데

그래서 친구를 찾아온 것 같은데,

밖에서의 일은 밖에서나 해결되는 듯,



보고싶지 않은 것을 보기 싫기에 눈을 감고,

보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그 괴리의 깊이 만큼 짠 눈물을 흘리며

다시 눈을 뜨고는 했다. 



archive - goodbye 를 같이

들을 때, 우리는 이 노래가 

우리의 노래였음을 알았을까. 



"you're my sweetheart.

Good and bye." 


말이. 말 같지 않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그래서 글 속의 목소리와

내가 내뱉는 말의 목소리는

꽤 달랐다. 



내 목소리는 걔한테 있으니까. 



하루하고도 7 시간의 차이 속에

각자의 24시간은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일들과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채워지면서,



서로 관성하던 시공간은

서로 중력하던 시공간은

날이 거듭할 수록

서로가 자기 시간에 없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운명에 자신을 내어주어야 했다. 



비가 오는데,

비가 오는 지 관심은 없지만

비가 와서 어느정도

내 슬픔이 정당화되는 방식으로 



오늘이 오후 네 시를 향한다. 



살아있음은 아주 단순한 법칙을 따르는데,

그 살아있음이 특정항 모습을 갖고,

특정한 목소리를 지니고,

그리하여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꽤 많이 복잡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지닌 방식으로

살아있음은 아주 단순한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땅이 있고, 

그 위에 건물들이 있고,

그리하여 개체들이 지낼 곳이 있고,

밖에 나가고, 그랬다가 돌아오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그러다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고. 



혼자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인생이었다. 


같이있는 바람에 공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겨우 알 것 같았는데, 

우리는 다시 혼자여도 충분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봐. 



"Thanks for happening to me."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and he cried. 

그러자 그가 운다.



"Poetically Speaking, you were everything to me." 

시적으로 말해서, 넌 나한테 전부였다고. 

and you know what, you, too. 

너두.



나지막하게 대꾸해주는 그의 한 마디가

가슴에 사무치는 순간에도

나는 departure 로 향하는 걸음을

멈출 수 없던. 



이런 상황들이 더 동화같았다.

더 드라마 같았고,

세트를 굳이 만들지 않아도

동선을 정하지 않아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는 우리가 함께 있던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래도 살아야 되냐고 묻고 싶은 순간에는

그래도 살았기에 만났던 그 사람이 다시

내 기억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삶이 바로 딜레마가 아닐까.


의식이 일단은 갇힌 몸을 지닌 채

의식의 속도대로 살 여력이 없는 

저 거울 속 울고 있는 여인을,

데리고 내일도 살아야 하는 것. 



그렇게 데리고 살다보면

저 여자를 웃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게


또 인생이라는 딜레마가 보장하는

사실 중 하나라는 것. 



이렇게 다 정의해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도

돌아서서 울어야 하는,


시간이 거듭할 수록

보임 당할 아는 사람들이 소중해지는 건,

나조차 기억하기 버거운 나를

그래도 보관하고 있는 archive 같은 존재라서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시선이 부담스럽고, 숨막히지만,

나조차 나를 주워담기 어려울 때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를 보고 비 온다고, 라면이나 끓여먹자고 

하고 있는 저 

1차원 적 시선이 나를 

그래도 밥을 먹게 했다. 



그리고 그 1차원 적 시선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그 순간은

충분히 찾아나설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생은

이렇게 정의하는 대로 흐른 적 없다는 것을. 



어쩌면 정의는 글로 인해서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겠다는 사람들로 인해서

정의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주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what's for dinner?:)"

"mayb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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