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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May 27. 2020

제자리에 갖다 놓을게요

엄마에 대한

나라는 한 개체의

엄마여야 하는 존재적 책임을

엄마가 존재하려는 혹은

존재하고 있는 그녀만의 세상에 갖다 놓고,



아빠에 대한

나라는 한 개체의

아빠여야 하는 물질적 책임을

아빠가 존재하려는 혹은

존재하고 계획하는 그 만의 세상에 갖다 놓고,



동생에 대한

나라는 한 개체의

남동생으로서의

존재적 시차를

그 아이가 존재하려는 혹은

존재하고 계획하고 가꾸는 중인

그 아이 만의 세상에 갖다 놓고,


친구들의

나라는 한 개체에 대한

미리 알았던

존재적 얽힘으로 인해

부여한 "무조건 이해해줘야 하는"

그 비자발적 의무에 대한 이미 없던 계약서를

찢어 버리고,


내 머릿 속

지도 속에

어떻게든 존재하려는 그들에 대한

멋적은 상상에서

살짝 벗어나니 숨이 쉬어진다.



실제로 태어난 시점과

같이 보내던 시간의 질량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점차 일상화 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적, 매몰 비용적 의무에 

일단은 서로에게 무리한 이해를

아직까지 요구하는 방식으로


서로가

한 때 서로에게 그토록

잘 알던 존재였고, 편했던 존재였다는 것을

보란듯이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이제는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들이 별로 없다.



각자가 근거하는 지도의 반경 5 km 안에서

"함께" 시간과 공간과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의

성질과 속성이 달라지면서

가족이라는 공유지는

"지금 가까운 타인"으로 

아주 유연하게 대체되는 방식으로 

엄마가 더 이상 엄마 같지 않은 섭섭함과

아빠가 낯설어지는 서운함과

동생이 알 던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애틋함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인정할 수 없다가도,



아마도

그들을 대체하고 있는 


내 “지금”의 시간과 공간과 눈맞춤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기억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던 습관에서

가능한 일인 지도 몰랐다.


그들을 미워할 수 있던 습관은 패키지로 따라오는 방식으로.



엄마를 한 여자로 놓아주고,

아빠를 한 존경하는 사회인으로 놓아주고,

동생을 멋지고 훌륭한 남자로 놓아주고,


비로소 나도


한 남자를 떳떳하게 사랑하고,

그들이 그럴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을 안을 줄 아는

방식으로


그들에게서 결국은 벗어나겠다는 방식으로 

그들과의 소꿉 장난을

재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른다.”

로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짧은 것 같아도

아주 긴

이 살아있는 여정에서

그들처럼 살아본다고

심각하게 잃을 건 없다는 것을.


그러고도

내 시간은 올 것이고

그러고도 혼자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할 시간은 올 것이고

그러고도 드라마 볼 시간은 올 것이고

그러고도 여행할 시간은 올 것이고

그러고도 가슴 뛰는 순간은

올 것이니까.



제자리에 갖다 놓을게요.


그래서 제 자리를 지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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