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의 시차

by Romantic Eagle

나의 존재적 기운이 강할 때는

주변의 어느 누구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해주지 않았다.



질투는 아니었지만

질투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나의 동료에서

나의 관객으로

바꾸려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에게 마찬가지의

존재였겠지만



그러나 내가 무대에서 떨어져서

그들이 위로할만한 존재가 되면

“그때 넌 참 예뻤었어.”

“내가 널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그때 넌 최고였지.”

이런식의 말을 비로소 뱉어낸다.


그때..



이제와서

단물 빠진 씹던 껌을 뱉는 듯

무심하게 하는 말을 듣는 존재는

없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없으니까.



이미 사라진 존재에게

이미 이별을 선고한 상대에게

어떤 말도 할 시간이

또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쩜 이토록

몇 발 씩

늦게 도달하는가.




인생은 결코 장난이 아닌데,

가끔 인생은 누군가의 지나친 장난인 것 같다




반면에 같은 물리적 감정적 시간에 존재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절묘한 타이밍을 잡고

그 어떤 투명한 문을 통과해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지은 것 같았다.


그를 ”절대적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절대적 세상에서도 인간의

희로애락은 피할 수

없겠지만.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인생도 없고

절대적으로 깨지지 않는 자존심도 없다.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있어도

“좋은 사람”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재를 둘러싼

모든 형용사인

사회적 프로토콜에 준하는

적절한 가면이 있기에

우리는


적절한 변명이 있기에


적절한 사정이 있기에


적절한 시차가 있기에


뒤늦게 사과하고

뒤늦게 사랑하고

뒤늦게 후회하고

멋쩍게 뒷북칠 기회라도 얻는 것이겠지.



그러나 이것까지 아름답다고 치부하기엔

인생은 꽤

비겁한 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I

Miss you

in a very Coward way only

if you’ll excu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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