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 Play least of Life
내키면 틀 수 있는 노래들은
나를 과거의 순간으로 데려가지만
과거의 사람들을 데려오지는 못한다.
과거의 사람들을 데려와도
서로 다른 맥락에 젖은 두 명은
더 이상 아는 사람 둘이 아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자신을 최대한 잊게 해주는
사람들은 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때때로 시켜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이 있고
좋아하는 베이커리가 집 가까이 있으면
자신에 대한 질문은 굳이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큼
자신들이 바쁘게 산다고 믿는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할 말은 있지만
다들 숨기고
어설픈 괜찮은 척으로
자신들이 꽤 괜찮은 연기자였다고
믿는다.
이제 정의하려는 어느 것도
나에 대한 세상이지
세상에 대한 나는
결코
같은 공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나의 이번 생에 대한 영원한
짝사랑인건가.
나는 수많은 케이스 중 하나이고
나는 나에 의해 특별해지는 방식으로
완전한 보편성에 수렴한다.
혼자는 지칠만 한 게임이다.
너무도 쉽게 주변 세상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모든 조각들을 동시에
위로할 수 있는 글은 없다는 것도 안다.
글을 쓰는 순간도 지나가고
글 속에서 위로 받은 나는
이미 어느 정도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글 밖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시험한다.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어떻게든 필요한.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도 물리적인
구분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도 모른다.
앞으로를 정의하지
않고 싶다.
정의하는 방식으로
그 grid에 갇히거나
정의하는 대로
예측 가능하지도 않을테니까.
Life Moves on Any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