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할 수도 없지만

덜 사랑하지도 않는 당신에게

by Romantic Eagle


너의 답을

원하지 않는 나의
질문이 잘못인지

나의 그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할 생각이 없는 너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잘못이 아닌데 잘못으로 여기겠다는 의도가

잘못인지,

잘못임을 알아도 잘못이라는 것을

중계할 줄만 알지

상황을 바꿀 의도는 없어 보이는 나의

전적으로 관조적 시선부터가 문제인지,

이 관조적 시선을 조장한

걸려 넘어진 몇 년 묵은 돌이 문제인지

모른다


이 또한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왜 이토록

끝나지 않는 의식적 토론을

일어나자 마자 시작해야 하고

이 모든 상황에 놓이게 된 경위를

매일 적어내면서

나의 오늘을 비로소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며,

이렇게 잡힌 오늘을 인지한다는 것은 왜

절대적 고독과 마주함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하는 것인지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알기 때문에

모른척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로 상황을 정당화하면서.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어야 되겠다는

본능 때문인가


생계 본능 앞에서는 그러나

어떠한 글도 사치이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생계 현상을

건너뛰고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으니까.

글이 사치가 아닐 수 있는 상황도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간은

언어로 경험하지 않기에,

심지어 그 짧은

경험과 기록의

시간 차이로 인한

왜곡의 누적된 환율이

각자 인생이라 부르는 것의 큰 문장을

완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 년 지난 기억은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잊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다른 형태의 자극이 강화되어 그 자극에 생기는 관성이 기억 수용역 속의 미리 있던 기억을

오버랩하는 것인지도



확신하는 것들이지만 과학적 증거가 없기에

maybe 식의 문장으로

불확실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damage를 줄인다.

그러나 증거는

이미 내 삶이자

나의 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포장은

어떤 것으로 하든 개의치 않는다.


이 또한 나의 지나친 편견임을 알기에

언제든 이 전제가 바뀔 것을 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나는

나의 타인들을

타인이라는 완전한 방어막 때문에

더 사랑할 수 없지만,

덜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것


항상 그렇지도 않는 방식으로.




Can’t love you any Further thaN I’m supposed to, but it’s not that

I’m loving you any 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