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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18. 2020

오늘을 팔아
어제 행 열차 티켓을 산다

글자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리하여 엮인 기분이 다

산화되어, 바라보는 공터에도

산발적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차피 신원 확인이 안 되는

타인들이 그래도 나를 피하지 않는 게,

송구스러울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지면, 



그렇게 따지면 자존감이 왜

위치를 표현하는 단어로 구분되어야

하는지 따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높든, 낮든, 자존.

나는 존재한다. 



그 감을 결정하는 게 

왜 멀쩡한 그 주체여야 하는지

왜 생각의 흐름은 꼭 

저런 식으로 자기를 낮추는 데에서

중력을 찾는지, 이런 식으로 

조건화되어서 얻은 이익이 없어도

꼭 이렇게 운을 떼는 사람이 있더라..,

그렇게 말을 해야 자존감을

찾은 듯, 꽤 만족스러워 보이는

저 여인을 어쩌면 좋을꼬. 



싶다고 말을 하는 것도

나라면, 그 둘 다 맘에 안 들면,

그래서 혼잣말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존재시켜야 하는 게 더 어렵다.

좀이 쑤신다. 



내가 나를 나라고 하는 것의 

정의가 꼭 저렇게 그래 왔던 방식으로

떼는 운이어야 한다면,

결국 주체의 원천을 찾아가다 보면

1900년대 할머니의 어머니 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찔한 family tree를 내려와

거울 속에 멀뚱멀뚱 자기를 쳐다보는

저 여인은 누구의 누구쯤인 것일까. 



그리하여 나는 현재, 이 34로 나이가

바뀌어가고 있는 여인이 집중해야 할 건

현재의 안녕이라는 것을 안다. 



누구의 누구여야 함에 대한 권리도 의무도

없이 나의 어떤 부분은 그냥 지금 

내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것에 그 소용을 

다 했다. 



지금 와서 12년 전 누구한테 

말썽을 부린 사건을 떠올리며

미안해하는 것의 소용이

어디에도 미치지 않음을 알 때,



그리하여 잊을만한 것은 

잘 잊은 것으로 치부하고

그럴 수 없는 것을 미련의 

상자에 넣어 자주 아주 꺼내보는

것의 심리는 현재의 만족스럽지 

않음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만족스럽지 않다고 정의하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지

꽤 

미스터리 한 방식으로

"현재"를 엮고 있는

혹은 지탱하고 있는

것의 구성물은 

꽤 많은 부분의 "과거"로

치부되는 기억의 네트워크이자

그 단서로 과거를 계획하는

"현재"를 구성하는 의식의

주체는 꽤 "나"인 방식으로

그와 엮인 여러 사람의 페르소나의

합이자, 그 또한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 

확인하기가 불가능 한

가장 가까운 타인들은,

그리하여 자주 만나는 방식으로

그들을 알고 싶은 것인지

그들의 눈 안에서나

존재하는 것만 같은

내가 그리워서인지

구분할 겨를도 없이

실시간 카톡이 넘나 든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사람" 혹은 "지위" 혹은

사회적 "위치" 간의 네트워크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난 적 없이

고독을 환상했지만,

고독 속에 있을 때만큼은

적당히 모르는 타인들로 

둘러싸여 있고 싶어 했다.



어느 장소에서 집에 가려고 해도

대체 몇 명의 사람들을 거쳐야 

그 영원히 고독할 수 있는

방에 갇힐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렇게 아무도 찾지 않을 때만큼

갇혀 있는 방이 반갑지 않다. 



가장 아이러니 한 건, 

그럴 때 내가 찾는 건,

영상 속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사람들의 모양이며,

그들의 눈빛이고,

결국 직접적 소통이 불가능 한

안전망에서 혼자 재생하고 멈추는

시나리오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냥 네가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하고 있는 거야.



이런 글을 써서

일일이 사람들과 나의

불완전하고 완전한 

불가피한 none of your business

의 zone의 지도를 만들어서

내가 혼자여야 하는 이유를

합리화하지 않아도



그냥 어디에도 네가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는 말이야. 



유튜브 없이 네 얼굴을 보며

잠들 수 있던 때가 그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친구를 만났다.

돌아가서 만날 남편과

아이가 있는 그녀와 몇 시간 동안의

대화를 한 것과 무관하게

나는 다시 nonebody로 

돌아가기 싫어서 

카페에 들렀다.



이 곳에도 나의 어떤 것도

없이 nonebody의 zone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글을 쓰다

집에 가서 

유튜브를 자장가로 틀어놓고

자겠지. 



이게 내 일상이다.

현실이자, 현재이자

오늘이다. 



이게 내가 오늘에 

충실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피하는 방식이다. 



...



그냥 니가 그립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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