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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17. 2020

어제 진행형

A를 A로 보기 위해서는

A로 존재해야 했다.

누군가를 자신의 누군가로

"착각"할 기회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착각"이 반복할수록

"착각"에 속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했으니까.



그리하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라는

말에는 꽤 오류가 많다는 것을

깨달을 때 즈음에 꼭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오류 투성이든,

"사랑한다"라는 말이 꽤

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닫는다."



는 그 사고가 진행되는 시작에

상대한 결론일 뿐,

바로 다음 순간에는

그 거룩한 깨달음과는 무관하게

마트에서 같은 고기를 두고

물론 g에 상대한 값이지만

더 싼 거를 살지, 더 비싼 거를 살지

의미가 결국 없을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잊을 만할 뿐이다.



문득,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인연이 있어서

내가 한국에 와야 한 게 아닐까

라는 득도한 여인의 시선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의 고집이

이 모든 "우리"를

"나"의 이름으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만큼

어디서부터 그를 그리워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냉큼 사진첩을 뒤지지만

같은 정도로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없기에

내가 보는 것은 잡지의 타인들이다.



의식은

구체적인 "인간"이라는

내레이터를 만나면서,

각자라는 "자기"가 들어있는

개체로 자유를 부여받은 듯 보이지만

집단의식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대한 "자유"라는 개념의 속도와

일치하는 "현재"를 살아낼 재간이 없는

방식으로

의식은 이미 코펜하겐의 바닷가이지만,

나는 산속 마을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인지 개체들 중 한 명이다.



글이 나의 존재를 좇아

서술해 내는 순간 그 주체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듯

사라지고, 그다음으로 기다리는

고뇌와 다음 안건에 대해 타협 중인

중얼거리는 대상만

어느 거리를 서성인다.



거리를 걸으며

혼잣말하는 것을 듣다가 문득,

이 대상 없는 중얼거림의 목적이

뭔가 싶었다.



그 순간 불안한 정도를 잠재우는

방식으로 인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그 목소리에서 연상

가능한 타인과 함께 있음을 느끼는 효과를

얻는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가다 돌부리에 넘어졌는데,

 혼잣말로 결코 자신이

그 돌부리를 못 본 것이 문제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사람이 없음에도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을 하는 행위를 통해

집단의식을 의식하며 그 속에서도

체통을 잃지 않으려는

체면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개념이 먼저든,

그를 인지하는 인간이 먼저든

나는 그래 왔던 "나"와,

그러지 않고 싶은 "나"와의

사이에서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적어도"

최소한의 시급으로 보장되는

월급 통장 정도는

갖고 있어야

누구의 "사람"이라도 될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too much information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를 제공하려는 의도는

어떻게라도 솔직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얼마나 too much information이든

얼마나 too less information이든

듣고 있는 타인은

그것을 기억할 겨를 따위는 없이

이득이 되는 내용이라면 다시 연락할 것이고

이득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면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그 단순한

잣대만 본능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인 것만 같다.



하던 생각과

일련의 특유한 향기를 음소거하고,

알던 사람의 연락이

다 삭제되고,

내 취향이 "사라짐"으로 둔갑하고,

봤던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기억과,

알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배고픔이 사라지고,

잠이 들고픈 의도가 사라지고,

갑자기 어두워진,

냄새를 느낄 수 없는

상자에 갇힌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여야 하는가.



말소되지 않은 주민등록증만

나를 증명할 것인가.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다시 나는 그랬던 나로

재형성된다.



내 의도의 향기,

내 언어의 목적,

시선의 방향,

목소리의 주파수,

이 모든 것들의 합이

닻을 내리는 매 순간의

프레임,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직접적 타인인

"나"에 의해 인지되는

방식으로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직접적 목적은

나여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타인에게 내 존재의

이유를 외주 하려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때때로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고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그 이기적인 착각으로 기뻤던 기억은

정녕

"추억"에서나

온전히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알든

모르든과

철저하게 무관하게

흘러가는 저녁도

쌀쌀해지고 있다.



갑자기 공허함이 스쳐 지나간다.



제법 빠르게 그 공허함에

내 기분을 내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공허할 뿐인

노을이 인사를 한다.


노을의 Hello이자

해의 goodbye.



그 어느 선상에

잠을 깨고 있는 그에게

항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해보려고 한다.



good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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