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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17. 2020

우리도 몇 달 전에는 "현실"이었어.  기억 나?

사람을 볼 때는, 내가 부서진 정도를

기점으로 그들을 읽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는

순간에도, 타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타인에게는 있지만

나에게 없는 것이 물질적으로

좋은 것들 일 때의 박탈감과

나에게 없는 것이 그 사람들의

고통이나 나빠 보이는 것들일 때의

박탈감은 같은 정도로 "남의 것"이지만

"좋아 보이는 것"을 대하는 입장은

"부러움"이고, "나빠 보이는 것들"을

대하는 입장은 "안심"이라면,

부러움이든 안심이든 내 것이 아닐 뿐이다.



그러나 "부러움"이라는 개념을

느껴야 할 때는, 비이성적인 질투를 하고 있고,

"안심"이라는 개념 속에 있을 때에는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나 싶을 뿐이다.



그러나 "부러움"의 순간도 벗어나지고,

"안심"이라는 개념도 어느덧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생각도 안 난다.



그렇게 따지면,

"현실" 보다 더 민감하게

우리를 건드리는 것은

실시간으로 "의식"의 안녕을

관통하는 숱하게 보이는

어떠한 일련의 "현상"인 방식으로

그것들은 일종의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아주 편협하게

편집된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나와 결정적으로

무관한 모든 것들에

일단은 휘둘리지 않고,

내가 목적하는 바를 살아내야

하는 미션에 놓여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꾸준하게

"사람"의 모습을 한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때 마침 "사람"처럼

생긴 내가



동족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

없고, 그들의 사정을

인지하고도 차마

모른 척할 수 없는 그 유전자에

인식된 바코드가 있는 바람에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얽히고설킨 방식으로

나는 타인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던 방식으로



그렇게 주된 "현실"이라는 개념은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거나

직접적으로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일련의 계속적으로 상호작용 해야 하는

"사람"들이 내 의식에 온과 오프를

제멋대로 하고 사라지는 것을

규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자 끝이 나는 것만

같은

화요일이다.



멀뚱히 서서

이 동네의 커피숍 6개 중

어디를 가야 할지

1시간 반을 고민한다.



그 정도로 나는

이 "현실"

내가 피할 수 없게도 "사랑"한다는

개념에 갇힌 그 상대방이

없어야 하는 세상을 산다는 건,



이토록 하나의 결정을 하는 데에도

무한한 시간이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백 가지를 선택하는 것도,

어떠한 선택의 옵션에도

"당신"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음에



그러나 나의 현실은

일련의, 일종의 "나"에 의해

살아져야 하기에,



그리하여 기억이 먼저

지배하는 의식을

같은 모습과 다른 상황의 괴리를

안고도 살아야 하는

그 일련의 "존재성"이

얼마나 잔인하게도 숭고할 수 있는지

나에게 증명하는 오후도 저녁이

되고 있었다.



항상 엄마를 따라 아빠와

엄마가 가꾸는 "밭"에

갔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너무 직접적인 현실들이

많아질수록

헷갈리는 나를 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과

진정으로 살아야 하는 영역의

불일치를 겪어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세월은

매몰비용으로 인지하기도 전에

증발한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다시 만나고 싶은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거의 4개월 만에 물어볼 재간이 생겼다.



그에게 아직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대화가 필요하다는 그의 답장에서

정말 우리가 연락 없이 각자의

소중해야 하는 "현실"과

우리의 "인연"을 맞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는 "다행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카페 입구에서 어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딸에게 핫 초코에 생크림을 올리고 싶은지

묻고 있다.



저게 현실이었다.

아무 존재적 저항 없이,

너무도 당연한 언어적 주파수 역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너와 함께 영원할

것이 일단은 보장된 그 영역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두 개의 목소리로

서로의 아주 가까운 거리를 더 엮어주는.




딱 저곳에,

당신이랑 내가 있었어.




기억나?



이제는 각자의 옆에는

진짜 다른 사람들뿐이구나.



이걸 사람들은

"현실"이라고 부르더라.



사랑한다는 말이

더 웃기게 들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말할 걸 그랬다.



이제는 흔한 I Love you라는 문구를

적어 내기도 부끄러운 거리에서

당신의 여자였던 한 애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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