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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Dec 06. 2020

오늘까지만. 의 오류는 내일도 오늘이라는 것이다.

아 

무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오

히려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문제로 여기게 만드는 일요일

아니, 그냥 집사람들이 빠져가고 시험을 준비하는

아직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의식이 그런식으로 느끼기를

선택하는 오전의 어느 즈음이다. 그 느끼기를 선택하려는 방향도

어제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방식으로 나는 다른 시각을 선택하기에는 

꽤 보수적이어야 하는 인간의 성향의 손에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들리는 노래를 "반복" 설정을 해두고도 그 노래를 꽤 질려하고 있을 뿐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도, 별 다른 더 나은 선택을 할 필요도

누군가의 압박도 없는 방식으로, 일련의 습관이라고 하기 보다는 

앞으로 12시간 "사람"을 만날 구실이 없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시선이 그립다기보다는 "커피"라는 이유를 매개로

온기가 넘칠만 한 곳으로 기웃거리려고 한다는 것이 맞을 것 같은 

방식으로 나는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중이었다. 

(정작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바쁘다.)


아니, 그 그리워하는 중이 얼마나 사실이든,

얼마나 거짓이든 일말의 의식이 자꾸 좆는 방향은 그 당신이 있는

곳이었고, 너무 멀리 보다가 지치는 나는 주변을 서성이며

추억의 향기에 살짝 웃음을 수줍게 내어주지만,

아, 웃음을 놓고 산지 오래되서 웃는 게 너무 어색하다. 



2일 뒤에 시험이 있다. 

그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꽤 그 사람만을 그리워하는

그 프레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어떠한 일련의

주위를 돌려짐도 그를 향한 마음에 대한 저항만 불러일으켰지만,

내가 얼굴을 보이며 존재하는 공간에서 나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함께 해야 하는 프레임에서는 그를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패턴에 적응을 해 가는 방식으로

나는 그를 잊고도 살아짐에 적잖이 놀라지만

그럼에도 그를 잊을 수 없음에 대한 팩트에 

더 놀라고 있는 중이다. 


뭐하냐고 묻는데, 

아주 깊은 물에 돌을 던진 기분이다. 

답이 올 때까지가 얼마나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그 암흑의 고요함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아무렇지 않게 오는 답장에 

더 놀라고는 한다. 

그리고 그 대답에 내 존재가

소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 답장의 온기를 손으로 한참을 잡고 있다. 


(Stay)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보란듯이 사는 것도 아닌데

나의 영혼은 허무함과 실패의 숙주가

되어있는 것만 같다.


썰물이 데리고 간 것들은

밀물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물질의 물리학이 무엇을 보장하든

생물체인 나는 산화되는 중이었다. 


이 시간에 

내 인생에 누가 없다고 보채고 싶은

마음도 없고,

오히려 그 사실이

내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을

흑백사진으로 만든다. 


그것과 무관하게 

세상은 흑백사진이지 않았고,

어디서나 웃음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고,

해가 좋은 날은 기분이 좋을 때도 있었고,

잠을 잘 자면,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개인의 생체 시간과

그 세상을 유용하는 방식과 계획과 

무관하게 옆사람들은 존재했다. 


가장 내가 좋아한 사람과 함께 살았다는

기억만 갖고 ,

내 것이 아니었음을 그 곳에 두고,

오히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지금 아


없음보다, 그럴 수 있었음에 

매 순간의 음이온을 양이온과 치환하고

그들의 세상을 더 축복해주고,

그러는 방식으로 그들이 있는 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제는 데려와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내가 축복을 보내기에는

나에게서 빠져나올 것이 

깊은 수심의 외로움 밖이라

나는 말을 삼키는 방식으로 

아주 멀지 않은 시간에 

그 사람을 

내 폰에서 

놓게 될 것 같음이 슬픈 방식으로

나는 다시 시험준비를 위해

예상문제 53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능의 존재로 

삶을 다각도로 느끼고 해석해서

시선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로 인한 슬픔과 상실에 대한 해석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복잡합이 창조한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단순할 수 없게 만드는 

그 아름다운 아이러니를

존경하는 방식으로

나는 모든 

존재하는 마스크를 인내하는 인간 사회 사람들이

꽤 존경스러운 방식으로

그 사실과 매우 무관하게


외로운




이료이리다.



"오늘까지만 연락할게. Aras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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