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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Dec 08. 2020

임시 묘비명

카페에 갈 때마다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것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카페를 나올 때마다

잊을만했다.



5분 전에 과자를 먹던 기억을

5분만 지나도 잊었고

그리하여 많은 양의 과자를

먹은 기억은 없는데

살이 찌고 있었다.



인생이 살만 한 유일한 이유는

처음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죽기를 선택하지 않아서이고

마지막으로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내가 죽겠다고 선언하는데도

아무도 잡지 않아서였다.


,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상처나 뻔한 지나치게 평범해야 하는 일상이

뻔뻔하게 익숙해져서

더 이상 나를 약 올리는 상대에게

약이 오르지 않아

죽어야 할 번거로움을

감당하기보다는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해져서이고,



일일이 사는 이유 죽어야 하는 이유를

운운하기에는 서른의 열병을 겪은

두뇌가 이미 No comment를

선언해서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지배하던 유년 시절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뿐이기에

잊을 만한 방식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없는

지금, 주기적으로 시험을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선생님이라는 타이틀로 월급을 받지 않는

선생님들이 세상에는 훨씬 많았고,

남자 친구의 존재 유무에 집착하기에는

그러한 타이틀이 없이도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호의는 두려워해야 할 만한 방식으로

적의를 찾아다닐 이유는 없었고,

삶과 죽음을 논하기에는

12번 버스를 기다리는 데 너무 추울

뿐이었다.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있었을 때에는

너를 싫어하는 이유는 나의 모습을 갖고 있어서였지만,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지금은

너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 방식으로

나를 싫어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세상이 알만 해졌을 때는

세상이 내 눈에 알만 해져서였고,

그때만큼은

세상은 내 손 안에서 벗어났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흘러가기에

나의 의도와 상관하는

유일한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는 그 존재하는 무게에

꽤 내 몸무게가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점의 각도가

그 초점이

나의 시선에게 몰린다.



저기 저 사람의 오해에

해명할 이유를 못 느끼는 이유는

각자 잠이 오는 밤이 되면

어차피 아웃 오브 안중이 될 사건으로

치환될 것임을 아는 데서 오는

항산화 작용 중 하나였고,


상대의 표정에 기분이 나쁘기에는

그들이 존재하는 차원이

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가 아니어서였다.



맨 정신이라고 하기에는

맨 정신을 정의하기 어렵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기엔

제정신이 아님을 정의하기도 어려울 뿐이다.



오늘을 오늘이라 여기는

여기 있는 개체가

숨을 쉬는 방식으로

목적지 A에서 목적지 B로

갈 준비를 한다.


그것만이

이 시공간과

폰과 브런치 앱과

그를 통해 한국어로 글을 짓는

개체의 존재를

안정화하는

유일하고 고유한

서술인 방식으로


이는 80억이 넘어가는

개체에게

아주 독립적이자

종속적으로 일어나는

보편적인

존재 안정화 작용이다.



그리고 이 또한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주 순식간에 되는 방식으로

시공간에

치밀하게 걸려 있으면서

시공간의 구분이 없이

산소에

의존하여

산소를 거르는 마스크를 낀

개체가


글을 발행하고

장소 A을 나서려고

의도한다.



이와 무관하게

나의 묘비명은 10 년 동안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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