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인데
왜 네가 필요한지 모르겠다지만,
상대가 없었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문자의 필요성이었으렸다.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이
필연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잠정적 우연이었던 방식으로
지금 이 모습을 하고
이런 류의 글을 쓰는
손가락의 뼈를 감싸는 근육과
살을 넘은 지문이 느끼는 일련의
노트북의 "존재"에 의해
그리고 그 존재로 인해 그려지는
어떠한 특정한 프레임을 결정짓는
의식과 그 의식을 울타리짓는 "국어"시간에
배운 일련의 문법으로
나의 12월 하고도 23일의 어느 저녁은
소용되는 방식으로
"너를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너에게는 무한하게 잊혀지는 방식으로/"
어떤 글의 시작도
너를 상실한 시점으로 수렴하려는
관성과 근성을 무시하기에는
나는 너를 잃은 자리에서 한 걸음도
더 산 적이 없기에
어쩌면 이 개체의 세상에서는
꽤 합리적인 글의 시작과 끝인 방식으로
누군가에게는 뻔하게 들리는
술 잔을 기울여야 감당 가능한
"동백 꽃 필 무렵"이렸다.
글이 비겁하더라도 글을 써야 숨이 쉬어지고
그리하여 없는 친구들을 불러오려는 기억의 파티는
자작하는 바람에 점차 그 키가 줄어드는
와인 병의 어느 시점과 그리고 그 시점이
병의 바닥을 서성이는 방식으로
내 심정은 그 바닥보다 더 아래에 있으면 있었지
더 높이 올라갈 스퍼트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12월 23 일에 이 곳에서 있고 말았다.
너도 잊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재개할 방식으로
너에 대한 생각을 건너뛰기 할 재간이 없는 방식으로
삶은 나에게 꾸준히 그 본질을 어필하고 있다.
그를 건너뛰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꾸준히 내일의 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오늘의 달을 나에게 안겨주지만,
보름달은 나를 가려버리고
초승달은 내 심정을 찌르고
나머지 달들은 나를 숨길 수 없는 방식으로
태양을 피할 수도 없기에
내일을 거쳐갈 량으로
오늘도 잠이 든다.
작년 연말에는 당신이랑 함께 있었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때의 그들과 함께 나랑 웃던 웃음을 짓느라
나를 잊은 그대에게
나도 당신을 잊는 방식으로 뭔가를 하고 싶지만
나의 어떠한 형태의 발악으로도 당신이
나를 그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내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은
오늘이라도 제대로 잠드는 것일 때,
나는 인생을 좀 알 것 같아서
할 말을 잃었다.
그리하여 입을 닫은 어른으로 살기에
너무 살 날이 많아서
나는 오히려 쓸데없는 말로
숱한 가정법으로 도배하는
어른이 될까봐 두려운
어른의 근처도 가지 못한 서른의 어느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