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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Jan 24. 2021

생각과 저항

The ability to resist a thought

보통 일요일 아침

그 전날 친구가 왔다 간 날

그 전날 친구와 술을 마신 날

아침은 

누가 왔다 갔다는 그 단순한 괴리감에 의한

허탈함.


그리고 앞으로 살 오늘의 시간이

완전 혼자라는 그 "허탈함'.


그리고 무거운 몸을 들어 올려서

일어나서 걸어 나가야 하는 그 

"무미건조한" 그러나 반드시

인생이라는 chapter에서

skip 할 수 없는 장면을 찍어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그리고 이러한 맥이 빠진 상황에서도

생각이 나야 하는 사람에 대한

그러나 생각"만" 해야 하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헤쳐 나가서


현재 위, 경도의 시각을 지내 나가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멋모를 저항.


등으로 인해 1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위의 생각들이 완전히 무시되는 "현실"

은 


의뭉스러운 아침을 반겨주는

술병들의 조소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아침의 시작은 해가 뜬 시간인지

내가 눈을 뜬 시간인지 구분할 가치도 없는 방식으로

눈을 감을 때가 되면 또 내일 떠야 할 눈을 

비비. 고 있겠지. 



그런 나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생각의 음의 자성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시간은 같았지만, 그 생각이 생각일 뿐이라는 

팩트에서 나의 하루를 떼어내는 일을 꽤 

스스로 놀랄 정도로 잘 해내는 중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그 생각에 

다시 주저앉아서 막 울다가

그 사람 생각하다가 일기를 쓰다가

아니, TV를 켜서 하루를 채널에

아웃소싱을 하고는 했을 텐데,



사실 볼 게 없어서,

넷플릭스가 없어서 

그 전제에 의한 당위적으로 

일어나는 " 포기 " 현상인지도

모르지만, 


딱 일어나서,

딱 1분 동안 환멸과 짜증과,

후회와, 그리움을 느끼고 나서는

 나와서 어제의 파티 현장을

파티가 일어난 적 없듯이 치우는 작업을 했고,

오늘 할 일을 계획했으며,

커피도 마셨고,



그러다 다시 끓어오르는 

뻔한 일요일의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한 잔의 물로 잠재우고, 

비이성적인 그리움이 사무치기 전에 

그 감정을 무시하고 또 뭐 있는지 다 아는

냉장고를 열었다 닫는 방식으로

그 생각을 지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보내고도 오후 2시가

안되어서 상당히 놀란 방식으로 

아직 설거지가 밀려 있었다. 



똑. 같은 날들이지만


소용없는 "감정"을 현재의

"사건"으로 상쇄하는 법에

습관을 들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것은 

철저한 "사후 확신 편향"의 일종이다.



지난 7개월 내내 이렇게 살지 못했으니까

지난 30 몇 년을 이런 식으로 안 살았으니까


같은 시간의 단위 대비

200여 일을 슬픔과 후회와 환멸 속에서

24시간을 수영했는데

할 만큼 한 어떠한 일련의 것들에는

그 사건의 형태와 무관하게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묘한

탈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는 이 시간이 오기를 고대했다.


그리하여 일련의 생각의 저항에서

그 저항이 이기는 시점인 지금

나는 내가 이루려고 했던 것을

결국 이루고 있는 현상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이제 뭘 알겠다고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상쇄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인과적인 방식으로 

필연이라 일컬을 수도 있겠지만,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절의 고통은

불공평하기 그지없었고,

그러나 내가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 일련의 사건을 일어나게 두고, 

그를 고통이라 인지하고 고통이라 여기고

그 시간을 버티겠다는 것도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어느 누구도 

선택하려 하지 않은 길이었기에

나는 그 "터널" 끝에 

오늘 같은 빛을 염두에 두고

하염없이 아팠을 것이었다. 



실존 앞에서는

글이 설 곳이 사실 없다. 

그러나 글이 진화하지 않았으면

실존 또한 여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글"이나 "실존"을 운운하기 전에

이미 그들은 그렇게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중이었다. 



오늘 하루 조금 컨디션 좋게

감정을 처리했다고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오늘을 나쁘게 보냈든,

좋게 보냈든과 무관하게

오늘은 존재를 이미 통과 중이다. 


이 순간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vision, direction and destination에 

달려있다. 혹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구분하지 않더라도

삶은 우리가 글을 배우기 전부터

순간과 맞물려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제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매일같이 연락을 하는 바람에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지

카톡을 확인하다가

아차. 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씩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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