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는 건가.
사건의 열리고 닫힘이
빈번하게 일어남에도
at the end of the day
잠을 청하고 일어나면
다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나를 조종하는 것 같다.
특별한 삶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일어나서
일련의 행동들을
의식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하다보면 어느 덧 저녁이 되어 있음이
내가 사라지는 것인지
살아지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한다.
이기적이어야 하는
모든 인간들의 본래 업을
다
영위하고도
찾고 싶은 사람이고 싶은 건
욕심이다.
결국 서로의
business
의 contract 상에서 유효한 날짜 동안
서로의
서로에 대한 필요를
최대화 하는 것이
서로가 궁극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이 아닐까.
성장이든 도태든
어쨌든 오는 내일이라는
어쩌면 오지 않을 내일이라는
그 너무도 당연한
그러나 너무도 소중한
양면 아닌 다면적 속성에서
당신과 내가 함께한 몇 시간이
영원한 방식으로 짧다.
주소록의
여러 contact 의
아쉬운 공허함이 가슴을 타고 내려 올 때면
이미 술 한 잔이 식도를 타고 흘러가고 있다.
사라지든
살아지든
순간의 조잡함까지 기억할 수 있을 때
기억해버리기로 했다.
몇 년 후가 되면
그 또한 기억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노련해 보이는 언니가 되어 있을 것이기에.
잃을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뿐이고
살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뿐이고
사라질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뿐이다.
그리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도
지금 뿐일 것이다.
지금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짝사랑 하면서
난 매우 진지하게
저녁에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