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고뇌'와 작별하고 싶을 뿐이다
있었다고 여겨지는 일이
기억에 남아 있지만,
그 것은 그 순간
감정을 많이 소모했다는 말이고,
그 순간 감정을 많이 소모했다는 것과
현재
홀로 마주하는 거리에서 필요한
생각은
교차점이 거의 없는 방식으로
걷고있는 내 의지에 의해
생각이 되어지는 중이었다.
떠오르는 누구든,
사실상
연락이 닿을 수도 없는
시간이고,
계약만 파기되면
다시는 봐야 할 일이 없는
관계들이지만,
희한하게도
머릿속에
침전해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의 정체라고는
지극히
내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일 때,
어느 누구도
그 현재에
내 생각에 상응하는
대꾸?를 해 줄 수 없고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을 때,
비로소
다가오는
퇴근 버스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만큼은
내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집에 가야 하는' 업무.
여유가
곧
죄책감의 공간이 되어서도
불안의 공간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의 공터가
부정적인 감정일 수록
혼자 생각하러 가기를 꺼리는
경향이 생겼지만,
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본질인 것인 지도 몰랐다.
불특정
타인과 마주해야 하는
시공간은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갑자기
확 깨져버린 느낌임과 동시에
그 나름의 다양한
아름다운 아로마를
이루어내지만,
때로는
작은 잔에
차곡 차곡 차오르는
크레마만
느끼고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제 10시에
창 밖에 나타난 새가
오늘은 왜 오지 않냐고
문자를 해서
오게 할 수 없듯이
인간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웃다가
오늘 토라진 사람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저러다 말겠지.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저렇게 갑자기 토라진 사람을
보면서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나는 그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내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어차피
밀물이 썰물이 되고
썰물이 밀물이 되듯,
매일 저렇게
삐져있을 수 있는 사람도
매일 기분이 좋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뿐이기에.
오늘은
아주 특별한 여유를
제공 받는 시공간이다.
내일부터 6일을 쉰다는데,
오늘만큼
여유가 충만한
하루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오늘만큼은
회사 분위기가 좋을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오늘의
이 설렘은
10월 4일이
무거움으로 상쇄할 것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출근을 계획하는 중이다.
매일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그러나 늘 그렇듯,
무표정으로 출근할
계획을 세운다.